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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불안과 마주하는가? 2024-05-01

영화 어나더 라운드 (Another Round) 포스터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소주 123병을 마신다고 합니다. 버거운 오늘을 견뎌내며 불투명한 내일에 대한 불안을 술의 힘으로 달래는 듯합니다.

통계상 우리보다 술을 더 많이 먹는 나라인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는 제목부터가 “한 잔 더”(another round)입니다. 주인공 ‘마르틴’을 비롯한 친구 4명은 일상에 지친 40대 교사들입니다. 수업에는 흥미를 잃은 지 오래고 가족관계도 낯설기만 합니다. 인생은 실패한 것 같고, 삶은 마냥 허허롭지요.

그러던 차에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농도 0.05%를 유지하면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가설을 듣고 직접 실험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니 정말 효과가 있네요. 없던 활력이 생기고 수업도 전과 달라지지요. 그러나 술이란 게 어디 적당히 마시게 되나요. 결국 중독에 빠지고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길을 잃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중독에 조심하라’는 식의 뻔한 결론을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인의 초조하고 황량한 인생에 주목합니다. 현실을 마주보고 바꿔나갈 용기를 내는 대신 술의 힘을 빌려야 하는 공허한 시도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연민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랑에 취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신앙을 도피처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지요. 발 딛고 살아가는 삶터로부터 눈을 돌리고 기복적인 기도 안에 숨어들려는 심리가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취함’은 알코올 중독과 뭐가 다를까요? 인생의 불안과 공허는 잠시 망각의 뒤로 숨을 뿐 결코 사라질 수 없지요. 교회의 가르침이 항상 스스로에 대한 명확한 성찰을 요구하고, 우리가 배운 사랑이 언제나 현실에서의 실천에 근거해야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는 한 학생의 구두시험 장면을 통해 불안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정의를 소환합니다. “불안은 실패라는 관념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며, 삶을 사랑하려면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직언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알코올처럼 거나하게 들뜨는 맛이 아니라, 몸에 좋은 약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쓴맛이지 싶습니다. 그 쓴맛의 힘으로 휘청거리는 자신을 똑바로 보고 세상의 어려움을 거슬러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그분의 사랑에 더 취하고픈 우리는 외칩니다.

“한 잔 더!”(another round)


글 _ 변승우 
(명서 베드로, 전 가톨릭평화방송 TV국 국장)
 

[가톨릭평화신문 2024-05-01 오전 9:12:02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