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상에 태어났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생사가 불분명한 일명 ‘그림자 아동’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에 생명을 지키고 아동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생명 존중을 실현하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생명 주일을 맞아 각 분야 전문가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방향을 모색해본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는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진=언스플래쉬
의료 기관이 신생아 출생 지자체에 직접 통보, 출생 신고 누락 방지 효과
우선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신생아의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제도다. 출생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채 살해·유기·학대 등의 위험에 처한 아이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신생아를 구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병원 밖(가정)에서 출산하거나, 미혼부·외국인 자녀의 출생신고에는 법적·현실적으로 제도가 적용되기에 어려움이 있다.
한국미혼모네트워크 오영나 대표는 “산모는 보통 병원 밖에서 혼자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결국 119구급대에 신고를 한다”며 “기존에는 119신고 일지로 출산을 증명할 수 없어 따로 법원의 절차를 밟아야 했는데,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산모 입장에선 좀더 간소하게 출생신고를 할 수 있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혼인 외 자녀도 사각 지대
진짜 문제는 미혼부와 외국인 아동의 경우다. 특히 국회가 후속입법에 지지부진하면서 미혼부 자녀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3월, 혼외자의 경우 생모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가족관계등록법 일부 조항들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에 2025년 5월 말까지 후속 입법을 해야 하지만,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21대 국회 임기 만료일은 5월 29일이다.
여성이 이혼 절차 없이 집을 나와 새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을 경우 출생신고의 과정이 더욱 복잡하다.
민법은 남편인 자를 친생자로 추정(제844조)하고 있다. ‘출생신고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영나 대표는 “출생통보제는 아동의 권리를 지키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미혼부는 출생신고에 있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기 때문에 하루 빨리 법률이 정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본국을 떠난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자격의 외국인은 국내에서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이들을 위한 출생 제도 법안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다. 한국에서 체류할 자격은 얻었지만 그들의 자녀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로 남아있다.
출생통보제는 ‘국민’에 국한, 외국인 아동 출생 신고 불가
출생통보제를 담은 가족관계등록법은 ‘국민’만을 대상(제1조)으로 하고 있어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김진 변호사는 “지난해 감사원이 찾아낸 최근 8년 동안 출생신고가 안 된 영·유아 약 6000명 중 4000명은 법률상 출생신고 의무가 없는 외국인 아동으로 추산됐다”며 보편적 출생통보제 도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21대 국회에 두 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이 역시 도입까지는 갈 길이 멀다. 김진 변호사는 “출생신고는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라며 “출생신고는 국적과 피부색·언어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어른들의 의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UN)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한다”(제7조)고 명시하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는 “출생통보제의 주체와 목적은 아동과 그 아동을 보호하는 데 있다”며 “이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어른들의 입장이 아니라 조금은 번거롭더라도 생명과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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