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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현대의 위기와 생명성(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2024-04-24
 

현대 사회의 문화적 위기 현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까닭은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 이래 세계의 문화적이며 생활세계적 상황은 급격히 변화했지만, 이를 해명할 철학적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의 계몽주의와 그에 기반을 둔 근대성의 철학은 나름대로 이 현상을 해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에서 보듯이 이 체계는 인간을 존재의 주인으로 설정할 뿐 아니라, 그가 지닌 이성적 특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체와 자연을 소외시키고 왜곡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했다. 그 현상이 현대에 널리 퍼진 과학 중심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드러난다.

과학은 객체적 지식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이 자연 세계에서 진리를 얻는 중요한 지식체계이지만, 그 과학 지식을 진리의 최종 준거로 설정할 때 실증주의적 지식 이외의 진리체계가 자리할 곳을 상실하게 된다. 이로써 과학이 말할 수 없는 영역을 진리의 터전에서 배제하는 역기능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적 발전을 촉진함으로써 전근대의 심각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현재와 같은 자유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물적 토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과도한 소비주의와 물질적 성장주의에 함몰됨으로써 심각한 불평등과 함께 실존적 인간의 내적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근대성이 과잉으로 치닫는 이 시대는 철학의 지적처럼 제작성의 형이상학에 함몰된 시대다. 과학기술이 모든 존재를 부품화한다면, 자본주의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상품화한다. 제작성의 형이상학은 후기 근대 체제가 존재자를 상품화와 부품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사물적 존재 이외의 존재를 이해할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마침내 현대인은 심각한 의미 상실과 초월성을 배제하는 공허함에 빠져들게 되었다. 제작성의 형이상학을 극복하고, 이 체계가 보지 못하는 그 이상의 영역을 언어화할 철학은 어떻게 가능할까.

생명은 일차적으로 생리학적 기반 위에 자리한다. 그럼에도 생명은 그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생물학적 조건 위에 자리하지만 그를 넘어서려는 지향성을 지닐 뿐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초월하려는 특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모두는 생명체가 지니는 본질적 지향성 때문이다.

살려는 의지를 지닌 생명은 물질적 영역을 넘어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여기에 자의식과 자기 이해를 지닌 인간은 생명의 내재적 특성과 함께 그를 통해 생명 자체를 초월성의 영역으로 드높이려는 본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최고의 존재인 신적 본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자각하는 인간은 인격성을 언어화하는 가운데 이러한 본성을 달성하려 한다.

의미론적 존재인 인간이 생명의 내재적이며 초월적 특성을 언어화할 수 있을 때 제작성의 형이상학을 넘어서는 사유가 가능해진다. 그럴 때 인간은 비로소 실증주의적인 현대의 과학 중심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를 통해 우리는 현대문화의 공허함과 허무주의적 상황을 넘어서는 지평으로 초월해갈 것이다.

생명 존중의 문화, 생명이 생명일 수 있는 문화는 비로소 올바른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신승환 교수
[가톨릭평화신문 2024-04-24 오후 2:32:1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