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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카인의 후예(상) 2024-04-24

우리는 내년이면 일본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지 80주년을 맞게 된다. 우리 겨레는 일본제국에 강제로 병합된 기간 36년 동안 일본에 저항하고 자주독립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싸웠다. 그런데 일본제국이 패전하고 우리는 잠시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으나 곧바로 세계열강의 동서 냉전 구도에 편입되면서 국토가 분단되고 체제가 대립하고 겨레의 혼도 반쪽으로 쪼개졌다.


일제 식민 통치 기간의 두 배가 넘었는데도, 한반도는 남북으로 갈린 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갈수록 멀어지고 증오심을 키우고 있다. 동포를 적대하며 비무장지대 양쪽에 한반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고도 남을 엄청난 무기를 배치하고 해마다 수시로 전쟁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같은 핏줄이고 같은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이어받은 한 민족인데 왜 이렇게 오래 서로를 배척하고 단절과 대결의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뿐 아니라 소위 자유민주주의 진영이라고 내세우는 남한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갈수록 격화되고 소통이 단절되고 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주고받는 극단적인 언어의 구사는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선거철이 되면 한 집안에서도 사회 문제에 대한 이념적 입장과 가치관 충돌이 두려워 가족 안에서도 솔직한 대화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런데 정치·사회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서도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미워하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응징하는 폭력적 상황을 연출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잘 아는 한 직장인은 직장 상사의 집요한 괴롭힘과 악의적인 모함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다가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고 말았다.


학원에서 학생들 사이에 다양한 이유로 벌이는 따돌림과 폭행은 오래전부터 일상화되어 있다.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또래 친구에게 어떻게 그토록 몸서리쳐지는 잔인하고 난폭한 가학행위를 집단으로 자행할 수 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상대방에게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평생 치유되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고도 별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한다. 이런 포악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여가를 즐기고 서로 친목을 다지기 위한 각종 스포츠에서도 프로 영역으로 진입하면 선수들 사이에서는 따돌림과 폭력이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나는 테니스나 배구 시합 중계방송을 즐겨 보며 좋아하는 선수들의 재능 넘치는 활약에 감탄과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어떤 시합에서는 즐거움보다 마음속에 서늘함과 씁쓸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선수들은 경기 중 자신의 강력하고 절묘한 스트로크를 상대가 받아내지 못하였을 때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거나 탄성을 지른다. 이는 선수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고 스스로 용기를 북돋는 몸짓이니 멋있고 장하게 보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 선수들은 그런 순간에 외마디의 괴성을 지르며 상대 선수를 향해 거의 전투적이거나 위협적인 시선으로 쏘아보고 포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선수의 얼굴에는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단순한 성취감이나 기쁨보다는 먹잇감을 낚아채고 정복한 짐승의 포효나 강력한 적의가 여과 없이 묻어나는 난폭한 표정이 스친다.


나는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씁쓸함을 느끼며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흉포함에 놀라곤 한다. 그 사람 내부에 일상에서는 표출되지 않는 포악한 에너지가 숨겨져 있지 않고서는 그런 표정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옛날부터 창세기를 읽으며 제일 알아듣기 쉽지 않았던 것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였다.


카인과 아벨 형제 사이에 무슨 큰 사건이 터졌거나 다툼이 있었거나 하지 않았는데 카인은 어느 날 갑자기 아우 아벨을 들판으로 끌고 가 죽여버렸다. 카인은 농사를 지으며 농부로 살다가 땅에서 난 소출을 하느님께 바쳤고, 아벨은 양치는 목자로 살다가 양의 맏배들과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굽어보셨으나 카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이에 카인이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고 한다. 사실 아벨이 바친 어린양 몇 마리보다 카인이 바친 농산물이 훨씬 값나가는 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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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4-24 오전 10:12:1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