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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김복순 작가 2024-04-24

떡잎부터 조각가


어릴 적부터 사람 얼굴을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친구들 얼굴을 그려서 많이 주기도 했고요. 할머니께서는 ‘쟨 공부는 안 하고 사람 대가리만 그린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셨어요. 저는 사람 얼굴을 보면 그게 다 입체적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얼굴을 주 대상으로 작품을 했어요.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한 건 서울 진명여중 다닐 때 했던 미술반 활동이었어요. 당시 교장 선생님이 좀 특이하신 분이었는데, 매일 오후 3시쯤 일과 수업이 끝나면 5시까지 특별 활동을 시켰어요. 미술반에서는 석고상 데생, 수묵화, 구성 등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각자가 가진 개성을 찾아주려는 것이었죠. 그중에서 저는 석고 데생을 열심히 했어요.


한번은 미술 시간에 부조 만들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제가 작품을 만드는 것을 뒤에서 쭉 지켜보셨어요. 반 애들이 ‘쟤는 미술반이에요’라고 하니, 선생님께서 ‘조각을 시켜야겠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한마디 말에 저는 ‘조각을 해야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진명여고로 진학해서도 미술반을 했는데, 학교에 조각실이 따로 있었어요. 체육관 한구석에 있었는데, 자주 들락거리며 작품활동을 했어요. 2학년 때 진명여고 50주년 기념전이 서울신문사가 운영하던 화랑에서 열렸는데, 전신상과 두상, 그리고 나무 얼굴상을 만들어 출품하기도 했어요.


어려운 조각의 길


잠시 ‘조각을 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미대 입시 준비를 하려면 학원에 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못 다녔어요. 저는 5남매 중 맞이였기 때문에 동생들 챙겨야 했어요. 억지를 쓰면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러다 고3 때 홍익대에서 실시한 한 대회에 참가해 은상을 받고 나서는 ‘그냥 조각의 길을 가야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에 들어갔어요. 3학년 때에는 국전에서도 입선하고요. 하지만 4학년 때에는 입선하지 못했어요. 창피했죠. 대신 졸업작품 전에 몰두했어요. 대리석으로 토르소 하나와 자화상을 만들었어요. 당시 김종영(프란치스코) 선생님이 잘 봐주셨던 기억이 나요. 제 토르소 작품은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하셨던 임영방(베드로) 선생님께서 가져가셨어요. 지금은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 수장고에 있다고 하네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당시 학장이셨던 김종영 선생님 주선으로 금란여고 교사로 일하게 됐어요. 미술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틈틈이 작업을 계속했어요. 학생들이 쓰고 남은 흙으로요. 여류 조각가 조각전에도 출품하고요.



결혼과 신앙, 그리고 전업 성미술 작가의 길


금란여고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최의순(요한 비안네)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광화문에 있는 한 다방에서 만났는데, 한 남자와 같이 나오셨어요. 알고 보니 최 선생님께서 제 중매를 서신 거였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신앙도 결혼하면서 받아들였어요. 원래는 개신교 신자였는데, 결혼하려면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별 거부감이 없었어요. 그냥 ‘큰집으로 가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죠. 어떻게 생각하면 제가 가톨릭으로 개종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겠죠?


1980년대 초에 당시 가톨릭미술가회 총무를 하시던 권녕숙(리디아) 작가의 권유로 가톨릭미술가회에 가입했어요. 매년 작품을 냈고요. 1990년 예수회 김태관(토비아) 신부님께서 선종하고 나서 서강대 박갑성(안드레아) 교수님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열었는데, 당시 박 교수님이 유리화의 대가셨던 남용우(마리아)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이후 남용우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저도 성미술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맨 처음에 작업한 것이 청주 내덕동주교좌성당에 있는 한복 입은 성모상과 십자가의길 14처였여요. 대전 목동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프란치스코 성인상도 만들었고요. 서울 대치동성당에는 십자고상을 봉헌했죠. 남용우 선생님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서울 신림동성당(현 서원동성당)에 봉헌한 파티마 성모상도 기억에 남아요. 2미터가 넘는 대작이었거든요. 지금은 엄두도 못 낼 규모에요.



조각의 매력


조각의 매력은 제가 열심히 한 만큼 성과가 있다는 거예요. 특히 조소의 경우는 크게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요. 어릴 때 동생이 ‘그림도 잘 그렸는데, 왜 조각을 했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저는 ‘물감 살 돈이 없어서 조각을 했다’고 농 삼아 답하기도 했어요. 흙을 빚어서 석고로 틀을 떠내고 나면, 그 흙을 다시 쓸 수 있거든요. 금속이나 설치 미술은 비용이 좀 들겠지만요.


저는 성물을 주로 만들어왔어요. 성물을 만들 때 쏟는 정열과 열정에 매력을 느껴요. 성모님과 예수님에 대한 영성을 표현하는 일은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껴요. 지금은 7월에 열리는 가톨릭미술가회 정기전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제 세례명이 아기 예수의 데레사(소화데레사)인데, 소화데레사 상을 만들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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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순(아기 예수의 데레사) 작가는
1945년 해방 전 중국에서 태어나 첫돌 무렵 귀국해 서울에서 자랐다. 1968년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1968년부터 1977년까지 금란여고 미술교사를 역임했다. 2009년 명동 평화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현재 전업 성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서원동성당 파티마 성모상, 성산2동성당 성가정상, 대치동성당 십자고상과 성가정상 등을 제작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4-24 오전 10:12:1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