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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버린 믿음 꾸짖으며 예언자의 도래 예고 2024-04-24
히브리어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은 말라키서로 예언서 전체를 마감한다. 아울러 그리스도교는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3,23)라는 말라키서의 이 말씀에 주목해 말라키서를 신약과 구약을 잇는 경전으로 구약 성경 맨 마지막에 배열한다. 말라키 예언자 이콘.

히브리어 ‘말라키’는 우리말로 ‘나의 사자(使者)’, ‘나의 심부름꾼’이란 뜻입니다. 이를 음차해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Μαλαχιαs’(말라키아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Malachi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말라키서’라고 표기합니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은 말라키서로 예언서 전체를 마감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는 말라키서를 신약 성경과 잇는 가교 구실을 하도록 구약 성경의 마지막 경전으로 배열해 놓았습니다.

말라키 예언자가 언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라키가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인지, 아니면 예언서 제목인 일반명사인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말라키는 기원전 515년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때로부터 에즈라-느헤미야 개혁이 있기 이전 사이에 활동한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최근 대다수 성경학자들은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3,1)란 내용을 근거로 말라키를 실존 인물로 보지 않고 경전 이름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불가타」 성경을 펴낸 예로니모 성인은 에즈라서와 말라키서가 유사하다고 여겨 에즈라를 말라키서의 저자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즈라서와 말라키서는 관점이 완전히 다른 경전입니다. 에즈라서는 레위인을 비판하지 않는 데 반해 말라키서는 레위인들의 죄를 고발(2,4-8)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키서의 내용을 토대로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했던 시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말라키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이미 돌아왔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지어졌으며, 그들이 경신례를 다시 거행하기 시작한 지 오래된 상황이었습니다. 기원전 515년 성전 재건축이 완성된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민족과의 혼혈혼 문제에 관한 에즈라의 대개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개혁은 기원전 440년께 가서야 단행됩니다.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는 하느님께 대한 회의론이 팽배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면 메시아 왕국이 바로 도래하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성전 재건과 결부시켰던 구원의 희망은 기대와 달리 성취되지 않았으며,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고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 실망감으로 신앙이 식어갔습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전례를 등한시하고, 사람들을 매수해 갖은 부정을 저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우상을 섬기던 과거의 잘못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말라키 예언자가 등장해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3,19)고 종말을 예고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일깨웁니다. 따라서 말라키 예언자는 기원전 480~460년께 활동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라키서는 총 3장으로 편집돼 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당시 유다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여섯 가지 사안들을 하나하나 들고 나와 논쟁을 펼친 다음, 새로운 시대를 향해 엘리야 예언자를 보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섯 가지 논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 사랑’에 대해 말라키는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습니다.(1,2-5) △‘그릇된 경신례와 참된 사제직’에 관해 합당하지 못한 제물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질책하고 징벌을 선포합니다.(1,6─2,9) △‘혼혈혼과 이혼’에 대해 동족 간 순수한 혼인을 마음대로 파기하는 유다인들을 질책합니다.(2,10-16) △‘심판과 정화’에 관해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정화하실 것이며, 악을 일삼는 자들은 응당한 징벌을 받게 되리라 전합니다.(2,17─3,5) △‘올바른 십일조와 예물 봉헌’에 대해 십일조와 봉헌 예물을 올바로 바칠 때 비로소 하느님에게서 풍성한 소출의 복을 받게 되리라고 가르칩니다.(3,6-12) △‘종말의 심판’에 대해 하느님을 경외하는 의인만 구원된다고 말씀합니다.(3,13-21)

끝으로 말라키서는 ‘주님의 날’을 두려움 없이 맞을 방법을 일러줍니다. 그 방법은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고, 엘리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3,22-24)

그리스도교는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3,23)라는 말라키서의 이 말씀을 주목합니다. 교회는 이 문장으로 신약과 구약을 잇는 경전으로 말라키서를 구약 성경 맨 마지막에 배열합니다. 공관 복음서는 이 말씀을 여러 번 인용하며 ‘요한 세례자’를 가리키는 내용으로 해석합니다.(마태 17,10-13; 마르 9,11-12; 루카 1,17)

또 요한 세례자의 광야에서의 활동과 나인의 기적(루카 7,11-17)은 엘리야와 사렙타 과부의 이야기(1열왕 17,8-24)를 연상케 합니다. 올리브 산에서 받은 천사의 위로(루카 22,43)는 엘리야가 만났던 천사의 시중(1열왕 19,5-8)을 기억하게 합니다. “불을 지르러 왔다”는 주님의 말씀(루카 12,49)은 엘리야의 심판하는 불(2열왕 1,10.14)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변모 현장에서도 엘리야가 등장합니다.(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4-24 오전 8:32:1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