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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범 주교, 백령도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 기도 2024-04-23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가 17일 남북한 긴장이 높아진 서해 최북단 백령도를 찾아 군장병을 위문하고, 군종교구 흑룡성당 대지 축복식을 거행했다. 서 주교가 백령도를 찾은 건 2011년 3월 이후 13년 만이다. 당시 군종신부이자 육군 장교였던 서상범 주교는 2010년 3월 북한의 백령도 앞 천안함 피격,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유수일 전 군종교구장과 백령도를 위문 방문했었다. 이날 서 주교는 백령도에서 냉엄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했다. 서 주교의 백령도 방문을 동행 취재했다.

 

안개로 3번 비행이 취소된 끝에 도착한 백령도 헬기장
(왼쪽부터 군종후원회 한민기 수석부회장, 홍성학 신부, 서상범 주교, 안영근 신부, 군종후원회 이병지회장.


해무(海霧), 3번이나 취소된 비행길

오전 7시 30분 용산 군종교구청에 도착했다. 하지만 전날 내린 비로 안개가 남아 있어 군에서 헬기 이륙이 어렵다는 통보가 내려졌다. 애초 8시 30분 출발했어야 할 비행은 취소됐다. 이어 연평도 부근에 해무, 즉 바다 안개로 운항이 어렵다는 연락이 다시 왔다. 9시 30분, 10시 30분 잇따라 비행이 거듭 취소됐다. 이날 헬기 이륙이 가능한 시간은 11시 30분 한 번만 남았다. 4번째 이륙이 취소되면 백령도 방문 일정은 무산이었다.

3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11시 무렵, 마침내 비행 허가가 떨어졌다. 11시 25분쯤 멀리서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헬기 2대가 나타났다. 서 주교를 비롯해 군종후원회 전담 홍성학 신부, 군종후원회 이병지 회장 등 일행을 태운 헬기는 서북쪽 바다로 기수를 향했다. 헬기는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약 1시간 30분 만에 백령도에 착륙했다.


냉엄한 안보의 현장,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천안함

백령도를 수호하는 부대인 해병대 제6여단에 들어가는 건 까다로웠다. 휴대폰 카메라를 가리는 필름을 부착해야 했고, 보안 앱을 깔지 않은 상태라 통화도 할 수 없다. 백령도가 여전히 냉엄한 안보의 현장임을 느끼게 했다. 백령도는 평양에 직접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군사 요충지다. 서울과의 직선거리는 201㎞지만, 평양과는 146㎞, 황해도 장산곶까지는 14㎞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 입장에서 백령도는 ‘목 밑의 비수’, 북한 입장에서는 ‘목 안의 가시’가 된다. 백령도는 2010년 3월 26일 인근 해상에서 경계작전을 수행하던 2함대 소속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침몰해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한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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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북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 두 동강난 천안함 잔해가 처참하다.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전시돼 있다.
 

이날 서상범 주교는 군의 노고와 희생에 감사를 표하고, 장병들을 위해 준비한 휴대폰 보조 배터리 1000개를 선물로 전달했다. 또 특별히 “6·25 전쟁 당시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힌 후 부상자를 돌보다 평안북도 벽동 포로수용소에서 선종한 군종 신부 에밀 카폰의 사랑을 기억해달라”며 「종군 신부 카폰」 책자를 6여단장 권태균 준장에게 선물했다.

서 주교는 “군종 병과는 평시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극한 상황이 펼쳐졌을 때 병사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년 장병들이 주말 1~2시간 민주 시민으로서 자라나고 순화될 수 있는 마지막 인성 교육의 장으로서도 군 관계자들이 군종장교들의 사목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반자가 돼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권태균 준장은 “군종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에 공감한다"며 “병무 환경 변화로 장병들이 자기계발 및 개인 생활에 몰두하고 있지만, 종교 활동을 통한 인성교육 강화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상범 주교 등 방문단 일행이 해병대 6여단장 권태균 준장 등 간부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 주교는 이날 방문에서 성 김대건 신부에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전구를 청했다.


6여단 전방관측소(OP), 성 김대건 신부에게 ‘화해와 일치’ 전구

서상범 주교는 6여단 전방관측소(OP)를 방문했다. 해병대 상황장교는 북한 옹진군의 순위도·어화도·창린도·비암도·기린도·마암도 등 장산곶 일대 섬들을 가리키며 북한군 배치 현황과 움직임을 설명했다. 특히 지난 1월 북한이 장산곶 일대에서 200여 발의 해안포를 해상 완충 구역으로 발사했던 지역이 멀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 주교는 “서해 최북단, NLL을 마주하고 대치하는 분단의 현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는 북쪽 지역 순위도는 성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이 깊기에 더욱 애절한 마음이었다”며 “교회사적으로 의미가 깃든 순위도를 바라보며, 성 김대건 신부님께 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전구를 청했다”고 말했다.

백령도와 순위도로 이어지는 섬들은 김대건 신부가 선교사 입국을 위한 통로 개척을 위해 갔던 역사의 현장이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음력 4월 18일 마포에서 배를 타고 연평도·순위도·소청도·대청도를 거쳐 백령도에 도착한다. 그때도 중국 어부들이 백령도 근해까지 와서 고기잡이를 했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음력 5월 12일 백령도에서 청나라 어부에게 편지와 조선 지도를 전달한 후 순위도로 돌아온다. 함께 간 교우들이 연평도에서 잡은 조기가 마르지 않아 순위도에 며칠 더 머무르길 원해 2주일 더 머물렀다. 이때 체포된 김대건 신부는 황해도 감영이 있던 해주로 이송됐고, 이후 서울로 압송돼 1846년 음력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된다.


군종교구 흑룡본당, 우리나라 가장 서북쪽 성당 부지 축복식
 

서상범 주교가 흑룡성당 마당에서 거행된 대지 축복식에서 성수를 뿌리고 있다.

군종교구 흑룡본당(주임 안영근 신부)의 주소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백령로 783. 인천교구 백령본당과 함께 우리나라 성당 중 가장 서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백령도에는 육해공군 부대가 모두 주둔한다. 주민만 5천여 명, 군병력도 수천 명에 달한다. 흑룡본당은 장병들을 위한 사목 중심지다. 


흑룡본당은 이들을 위한 사목 중심지다. 매주 40여 명의 군장병들이 미사를 봉헌한다. 하지만 흑룡본당은 지은 지 오래돼 비가 새는 등 각종 시설물이 노후화됐다. 이에 군은 올해 중 기존 성당을 허물고 신축할 계획이다. 서 주교는 백령도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흑룡성당 마당에서 부지 축복식을 거행하고 안전한 공사를 기원했다.

신자들은 서 주교의 백령도 방문을 크게 기뻐했다. 흑룡본당 사목회장 서대석(안드레아) 중령은 “주교님이 이렇게 멀리까지 와주셔서 매우 기쁘고, 이렇게 축복해 주셔서 큰 힘이 된다”며 “건물이 많이 노후돼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어려움이 있는데 성당이 신축되면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순(수산나)씨는 “본당 식구들이 적어 가족처럼 잘 지내고 있다"며 “날씨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 힘든 가운데 주교님께서 와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헬기에 몸을 실은 서 주교와 일행은 오후 3시 30분 백령도 헬기장을 이륙했다. 서 주교는 “해병대원 등 장병들을 격려하고, 신자들에게는 기도하며 나라를 지키는 '평화의 파수꾼'이 되자고 권했다"며 서울로 향했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4-23 오전 11:32:0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