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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행복한 순간 선물한 한 장의 ‘인생샷’ 2024-04-23

“사진 속, 생각보다 멋있는 제 모습을 보니 ‘나도 소중한 사람이 맞구나’ 하는 기쁨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내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노숙인 박길성(79)씨는 4월 19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영성센터 앞 운동장에 펼쳐진 ‘장수사진’ 촬영 텐트를 찾았다. “월남전 이후 누가 내 모습을 찍어준 적이 없다”는 그는 촬영을 마친 뒤 “나도 몰랐던 내 행복한 모습을 발견하니 무덤까지 간직할 소중한 선물을 얻은 기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숙인 무료 급식소 명동밥집(센터장 백광진 베드로 신부)은 올해 노숙인 자활사업 일환으로 지난 3월 무료 ‘장수사진’ 서비스를 시작했다. 매달 3회 이·미용 서비스, 긴급의료지원 및 심리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왔듯 노숙인들에게 단순히 밥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고자 기획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살기 쉬운 노숙인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인생샷’(살면서 가장 잘 찍은 사진)을 남겨줌으로써 소중한 추억을 기록해 주고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높여주는 것이 취지다. 촬영기사는 명동밥집에서 3년째 봉사하는 전문 사진작가다. 그 사람의 가장 멋진 모습을 선사해 주고자 노숙인에게 의자 위 포즈를 취하거나 환하게 웃어보게 돕는다. 사진은 2주간 선별, 프로그램 보정 등 작업을 거쳐 전시용으로 쓰이는 아크릴 액자에 끼워져 노숙인 품에 안겨진다.


정영길 작가(타대오·서울 용산본당)는 “정형화한 증명사진과 달리 개인의 고유한 매력을 끌어내는 프로필 사진을 찍어 드리고 있다”며 “노숙인들이 사진을 통해 가장 행복했던 자신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보세요, 웃으시니까 이렇게 화사하고 보기 좋잖아요. 앞으로는 많이 웃고 다니셔요~!”


흉터, 듬성듬성 빠진 이…. 자신도 소중한 사람임을 확인하고 싶지만 감추고 싶은 삶의 멍에 때문에 촬영을 주저하는 노숙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누구나 한 인격체”라며 편안히 대해주는 작가의 진심, 결과물에 듬뿍 녹아난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에 노숙인들은 크나큰 자아 긍정을 맛본다. 명동밥집을 찾는 어르신 손님이 많은 만큼 “죽으면 영정 사진으로 꼭 쓰고 싶다”는 반응은 이미 익숙하다.


친구의 ‘장수사진’을 보고 이날 촬영을 신청하러 온 김정주(88)씨는 “자기 존중을 모르고 살다가 죽음을 맞게 되는 사람들에게 아무 대가 없이 ‘소중함’을 안겨주는 봉사자·직원들께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센터장 백광진 신부는 “무연고자의 경우 임종 시 걸어둘 사진 한 장 없는 분들이 많다”며 “그들도 자기 사진을 간직해 ‘나도 세상에서 이렇게 살다가 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수사진’ 서비스는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영성센터 앞 운동장에서 매달 넷째 주 금요일 오전 10시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는다. 촬영은 둘째 주 수요일에 진행한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4-23 오전 9:12:1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