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원가톨릭대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신학교까지 걸어서 40분 정도 걸리는 태봉산 자락에 있는 우리 수도원 수원분원에서 다녔다.
시골 산자락에 있는 집이어서, 남은 음식물이 생기면 밭에 거름 삼아 뿌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원장 신부님이 곤지암에서 얻어온 ‘곤돌이’라는 이름의 잡종개가 왔다.
이후로 잔밥은 모두 곤돌이 차지가 되었다.
곤돌이는 참 자유롭게 자란 놈이었다. 요즘 도시에서는 반려견을 잘 단속해야 하지만, 당시 시골에서 자란 강아지들은 구속받지 않고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동네를 자유분방하게 다녔다. 아무렇게나 키워도 되는 잡종견이라 그랬는지 동물 병원에 자주 데려가지도 않았다. 그래도 잔병치레 안 하고 씩씩하고 튼튼하게 자라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놈이 어디서 뭘 잘못 얻어먹고 왔는지 계속 토하고 설사를 하며, 우리가 주는 음식을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우리 신학생들은 너무 놀라고 안쓰러워서 곤돌이를 차에 태워 읍내에 있는 가축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난생처음 병원에 간 곤돌이는 주눅이 들어 무서워서 떨고 있었다. 가축병원 원장님은 곤돌이를 진찰해 보시더니 설사의 원인을 정확히 모르시겠다며, 일단 주사를 맞히기는 했지만,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면서 일단 집으로 데려가라 하셨다.
한 수사님은 더 크고 좋은 병원으로 가볼까 하고 제안했지만, 원장 신부님이 그냥 수도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셔서 안타까운 마음을 안은 채 곤돌이를 데리고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날 곤돌이가 사라져버렸다. 수도원 근처를 돌아다니며 곤돌이를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개들이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떠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며 모두들 슬픔에 잠긴 채 곤돌이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흘 뒤’에 곤돌이가 살아서 돌아온 것이었다.
원장 신부님은 이놈의 곤돌이가 살기 위해서 산에 들어가 약이 될만한 풀을 뜯어 먹고 살아났다고 하셨다. 우리는 살아 돌아온 곤돌이를 끌어안은 채 곤돌이의 부활을 다 함께 기뻐하였다.
곤돌아, 부활을 축하해.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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