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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부활 제3주일 | 2024-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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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이야기로 부활 체험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아름다운 내용입니다.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은 ‘클레오파스’이지만 다른 제자의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저자 루카는 두 제자의 신원보다는 그들의 행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들이 함께 길을 가며 근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차근차근 복기하고 있었고, 또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세밀히 전해줍니다. 절망감에 포획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흔하고 자잘한 우리 인생살이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불쑥 나타나셔서 그들과 동행하시는데,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이 두 가지 동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셨다’ 그리고 ‘함께 걸으셨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수난의 시간에 도망갔던 제자들, 두려움에 숨어 있는 제자들 그리고 무덤 곁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를 먼저 찾아가셨음을 성경은 들려줍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이 먼저 다가가셨고, 절망에 끌려 들어간 그들에게 먼저 말씀을 건네십니다. 우리 역시 절망과 실의에 휩싸여 엠마오로 내려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먼저 가까이 다가오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것은 그늘 드리운 삶에 큰 위안이 되어 줍니다. 생면부지 낯선 이가 ‘무슨 일이냐?’며 던지는 질문에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두 제자는 걸음을 멈춥니다. 그들은 그가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라는 볼멘소리를 합니다. 제자들은 낯선 이가 탐탁지 않았지만, 그분의 거듭된 질문에 그간 세간을 뜨겁게 달궜던 ‘나자렛 사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그들의 입을 빌려 예수께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24,19)이셨음을, 또 그분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셨는지 그 도시와 온 이스라엘이 알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들은 예수께 걸었던 기대와 비극적 최후가 빚어낸 절망감과 좌절까지 속마음을 모두 비워냅니다. 덧붙여 여자 몇몇이 전해준 부활 소식과 빈 무덤이 초래한 불안과 혼돈스러움도 쏟아내었습니다. 그러자 낯선 동행자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서를 두루 인용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24,27)하시며 그들의 둔한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분 가르침의 핵심은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 서야 영광 속에 들어가신다”(24,26)는 것입니다. 얽힌 타래를 풀어내는 가르침으로 그들 마음에 아슬아슬한 희망이 시작되려는 찰나, 목적지 엠마오에 도착했습니다. 적잖이 인상적이었던 낯선 이가 더 먼 길을 가려는 듯 하자 그들이 그분을 붙잡습니다. 제자들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보여집니다. 그들은 범상치 않은 기운과 매력을 지닌 낯선 이와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분이 “빵을 들고 찬미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시는”(24,30) 모습에 지난 기억이 되살아났고, 그 순간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루카는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고 했음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알아봄’은 시각적 작용을 통한 알아봄이 아니라 이성적 작용을 통한 알아봄입니다. 제자들의 알아봄과 동시에 예수께서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지만, 주님은 이제 그 신비로운 만찬을 통하여 그들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분을 알아봄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그들이 낯섦을 받아들인 데에 있습니다. 이 낯섦과의 만남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흔의 의미를 심도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고백에서 보듯이 이미 길에서 가르침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만찬의 ‘친교’에서 마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갑자기 사라지셨다는 것은 부활의 주님을 생생한 체험으로 만나지만, 시각적으로 제한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 만나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은 낯선 이에게서도, 외로운 이웃에게서도 만날 수 있는 폭을 넓혀 주십니다. 객관적이고 파편적 이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경험되고 만날 수 있는 분이 되셨습니다. 두 제자는 즉시 절망으로 떠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갑니다. 예수님께 일어난 역전이 제자들에게도 일어났음을 봅니다. 그들이 도착해 보니 다른 제자들 역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경이로운 체험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듯 부활 체험은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떠나갔던 제자들을 되돌아오게 하고, 자신의 체험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부활 신앙의 이야기는 더욱 생생해지고 풍성해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부활의 증인으로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풀이해 주셨을 때 그들 마음이 뜨거워진 것처럼, 우리도 말씀 안에서 마음 뜨거워지는 날들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글 _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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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19 오후 3:09:04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