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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재활원 ‘요셉베이커리’에서 만난 부활 | 2024-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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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재활원 보호작업장(원장 박미선 로사리아)이 운영하는 요셉베이커리. 3월 21일, 부활을 앞두고 쿠키와 빵을 굽는 손길이 바쁘다. 설거지와 반죽, 모양 만들기, 빵 굽기, 온도와 시간 체크, 포장까지 각각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근로자는 모두 중증 지적장애인이다. 오븐 온도와 빵 굽는 시간을 체크하고 쿠키를 포장하는 단순한 일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지적장애인들은 “내게 일을 맡겨줘서 좋다”고 말했다. 밀가루는 혼자서 맛을 낼 수 없지만, 다양한 재료와 정성스런 손길이 더해지면 맛있는 빵으로 재탄생한다. 이곳의 장애인들도 혼자서 할 수 없던 일들을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함께해 준 사람들 덕분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이 함께 일하는 곳. 요셉베이커리에는 매일 달콤한 부활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느리지만 오늘도 한 뼘 성장한 이들이 만든 빵 요셉베이커리에는 제빵기사 2명과 지적장애인 12명이 근무하고 있다. 빵 맛집으로 소문이 난 덕분에 전국에서 주문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하루 동안 완성되는 빵은 1000개에서 많게는 2000개 가량. 취재를 위해 찾은 3월 21일에도 부활을 앞두고 늘어난 주문량을 소화하느라 베이커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소보로빵, 피자빵, 모카빵, 카스텔라 등 이곳에서 만드는 빵 종류만 20가지. 취재를 하는 1시간 동안 서너 가지 빵이 금세 테이블에 올라왔다. 제빵기사 2명이 소화하기 힘든 양이지만, 옆에서 성실하게 보조하는 지적장애인들 덕분에 요셉베이커리의 오븐은 27년째 온기를 잃지 않고 있다. 요셉베이커리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중증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중증 지적 장애는 지능지수가 20~40인 경우로, 언어와 운동의 발달에 제한이 있다고 의학적으로 정의된다. 지적 장애 등급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 기자가 본 요셉베이커리의 지적장애인들은 제 몫을 잘 해내고 있는 우수한 직원일 뿐이었다. 한창 바쁜 오전 시간, 오븐을 담당하는 직원은 빵이 잘 부풀었는지, 타지는 않았는지 뜨거운 오븐 앞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갓 베이커리에 들어와 훈련생인 직원의 업무는 오븐 온도와 빵이 들어가고 나오는 시간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단순할 것 같지만 한번에 대여섯 가지 빵을 만드는 동안 꼼꼼히 시간을 체크하는 일은 집중력이 필요해 보였다. 이를 알지 못한 기자가 짧은 질문을 던지자, 대답할 새 없이 시계와 시간표를 번갈아 보는 직원의 눈빛이 여간 날카로운게 아니다. 포장하는 일도 녹록지 않았다. 쿠키의 경우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봉지에 쿠키를 넣는 게 쉬워 보여 시도했지만 얇은 쿠키는 손에서 금세 부서져 버렸다. “다섯 개를 한 번에 잡고 조심해서 넣어야 해요.” 이를 보다 못한 베테랑 직원이 조언을 건넨다. 요셉베이커리에서 재료 배합 등 섬세한 작업은 비장애인인 제빵기사가 담당한다. 지적장애인들의 업무는 반죽을 담고, 빵판을 닦고, 오븐에서 빵을 꺼내고, 포장하는 단순한 일들이다. 매일 같은 일을 하지만 능숙해질 때까지는 비장애인의 몇 배에 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날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해 좌절하고, 오븐에 집중하지 못하고 빵을 태워 슬퍼한 시간들은 느리지만 그들을 성장하게 했다. 그 시간이 모여 요셉베이커리에서는 오늘도 맛있는 빵이 완성되고 있었다. ■ 부활을 향해 함께 가는 사람들 청주교구에서 운영하는 충북재활원(원장 김성우 이사악 신부)은 1954년 전쟁고아를 돌보는 보육원에서 시작해 1973년 지적장애인을 치료하고 교육하는 장소로 사업을 변경해 지금까지 장애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적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고자 1997년 충북재활원 옆에 세워진 보호작업장은 직업상담, 직업능력평가, 적응훈련, 취업알선, 생산품 판매 등 직업재활과 관련된 각종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요셉베이커리뿐 아니라 봉헌초와 전례초 만들기, 임가공 작업에 지적장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보호작업장의 장애인들과 가장 가까이 소통하는 이들은 직업훈련교사다. 요셉베이커리를 담당하는 손창준 팀장은 업무가 수월하게 순환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직원들과 소통한다. 이날 손 팀장은 설거지가 끝난 직원에게 포장 업무를 지시했지만, 이야기를 듣고도 직원은 주방을 떠날 줄 모른다. 손 팀장은 당황하지 않고 다시 한번 업무를 지시한다. 복잡한 순서를 기억하거나 정확하게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지적장애인들에게 반복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손 팀장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반복해서 교육하면 언젠가는 해낸다는 것을 알기에 지적장애인들과 일할 때는 기다려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 청주교구 가톨릭청소년센터 1층에 문을 연 요셉베이커리 카페 ‘유벤투스’에도 보호작업장 지적장애인들이 근무하고 있다. 지적장애인인 직원은 커피를 만들고 계산하고 서빙하는 일까지, 업무 전반을 능숙하게 수행했다. 간혹 작은 실수가 발생해도 함께 일하는 직업훈련교사는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이들이 홀로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끌고 있었다.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며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는 김민주(33)씨는 “커피숍 사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조심스레 전했다. 근사한 표현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요셉베이커리가 ‘행복한 곳’, ‘소중한 곳’, ‘능력을 쌓아주는 곳’이라는 지적장애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들의 진심을 알기에 충분했다. 선입견 없이 지적장애인과 함께 걸어준 사람들 덕분에 요셉베이커리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가능해졌고, 이들의 동행은 부활이 우리 곁에 현실도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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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19 오후 3:07:53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