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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7) 종교와 폭력(상) | 2024-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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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국제무역센터 테러 사건 이후 세계의 모든 나라는 끊임없이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테러리즘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 런던과 파리, 니스 등 평화롭던 도시에 예기치 못한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시리아와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스리랑카 등지에서 대량 학살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테러와 폭력 사건의 원인과 배경에 항상 고질적인 종교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고 평한다. 종교는 원래 폭력의 고리를 끊고 사람을 갈등과 폭력으로부터 해방하고 평화로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데, 종교로 말미암아 폭력이 증가하고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너무 큰 모순이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 안에 종교와 폭력이 이미 오래전부터 동반자로 작동해 온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군주들 사이에 분열과 전쟁이 100년 넘게 이어졌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의 세력 팽창을 위한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도 우리는 지구 곳곳에서 종교의 차이로 인한 분쟁과 갈등이 배태되는 모습을 본다. 종교와 폭력의 연결 고리는 현실적으로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종교와 폭력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 오랜 통념이 진실로 근거 있는 명제인지 우리는 좀 더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여정에서 분명히 종교의 이름을 걸고 응징과 복수와 폭력을 불사하는 이들이 여기저기 출현해 왔다. 그러나 종교에 온전히 투신한 많은 이들은 남을 괴롭히는 폭력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다. 오늘도 세계 구석구석에는 종교의 가르침을 진실로 실현하려는 수십만 명의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난하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음식을 나누고, 병자들을 치료하고, 옥에 갇힌 재소자들을 방문하며 위안과 평화를 선물하고 있다. 나는 병원에서 하루에도 혼자 100명 가까운 환자를 진료하며 녹초가 되는 일정을 소화하다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휴일에 이주노동자와 노숙자 진료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봉헌하는 의료인(의사, 약사, 간호사 등)들을 여럿 안다. 그런데 안 보이는 데에서 이런 지고한 선행과 희생을 실천하는 이들은 스스로 크게 떠벌이지도 않고 나팔을 불지도 않는다. 언론은 매일 지속되는 이런 이들의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는 활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몇 안 되는 과격분자들이 어쩌다 벌이는 잔인한 폭력과 극단적인 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해설한다. 그리고 그 폭력의 주인공들이 특정 종교에 몸담은 일이 있으면 마치 그 종교 전체가 그에 가담한 것으로 낙인을 찍어 일반화하고 확대 해석한다. 현실 속에서 종교는 순수한 가르침이나 교리로만 존재하지 않고 조직과 제도와 사람을 통하여 세상 안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유지된다. 그래서 종교는 초연하게 정신적인 영역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세상에 영향을 주고 세상에 개입하고 세상과 어울린다. 종교는 항상 세상과 함께 작동해 왔다. 고대의 제국들은 종교를 바탕으로 실존했다. 동서양 제왕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권위와 정체성이 신들에게서 나왔음을 전제로 국가와 국민을 다스렸다. 이집트의 제왕은 태양신의 아들로 처신했고, 중국의 제왕도 스스로 하늘의 아들로 칭하고 제사장 신분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고대 국가들은 제정일치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실행했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황제의 정치적 권위로 교회의 영역까지 개입하고 다스리려 하였다. 세속의 정치 지도자들은 종교를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최대한 활용했다. 사실 종교적 갈등으로 소개되고 해석된 사건의 배경에는 종교 자체의 차이보다는 갈등 당사자들의 세속적인 이해관계가 동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종교적 가르침의 차이가 아니라 땅을 더 확보하려는 욕구, 땅에 매장된 석유, 금, 다이아몬드 같은 고가의 지하자원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국가 간에 전개되는 전쟁도 모두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촉발된다. 제한된 공간에 묻혀있는 지하자원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소수가 독점하는 불의에 대해 다수가 분노할 때 갈등이 일어나고 분쟁이 터진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북아일랜드의 분쟁은 주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사이의 충돌로 소개됐다. 그러나 이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 야기된 분쟁이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다. 북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원래 자신들의 교회를 보유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들이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떨어져 나가 영국에 귀속하려 했던 것은 자신들의 종교가 프로테스탄트였기 때문이 아니다. 북아일랜드 종교 분쟁이 발생한 원인은 18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이 아일랜드에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북아일랜드에 이주 온 장로교인들은 가톨릭신자들을 밀어내고, 그들의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기존의 아일랜드 인들이 차별과 억압을 받았으며, 이들의 갈등은 무장 투쟁으로 발전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_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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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19 오후 3:07:53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