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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주일 특집] ‘사제직 3년차’ 이준혁 신부의 하루 | 2024-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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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첫 학교, 첫 결혼 생활. 기대에 부풀어 첫발을 내디디던 그때와 달리 사명감이 무뎌지고 마는 건 인간의 나약함 때문일까. ‘3년차 증후군’이라는 시쳇말처럼 어느 길이든 꼭 3년째면 “여긴 내 길이 아니야”라며 중도 하차하는 사람이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성당이 곧 집 “이번 주는 유독 경황이 없네요.” 4월 12일 서울 이문동성당 사제관. 낮 묵상 중이던 이준혁 신부가 쑥스러운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오늘은 새벽미사를 주례하고 사제관에 돌아와 사무를 마치고 미용실을 다녀왔더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이 신부는 “인터뷰를 마치면 곧장 한 신자와 상담 약속이 있어 나가 봐야 한다”며 벽에 걸린 사목계획표를 가리키며 웃었다. 매일 최소 1대씩 있는 미사 집전, 본당 단체 회합 참석을 비롯해 신자 개개인과의 사목 상담 및 만남이 나날이 일과로 주어지는 본당 신부 생활. 이번 주는 특히 일이 많다. 어제도 새벽미사 주례 후 짐 정리를 마치자 그나마 개인 시간이 주어지는 낮에도 여유 없이 보냈다. 신임 교구 보좌주교 서품식에 참례했기 때문이다. 5시가 넘어 사제관으로 돌아와, 6시 혼배 면담 및 성사, 7시30분 본당 미사, 8시30분 중고등부 회합까지 일정이 이어졌다. 또 이번 달부터는 평일 저녁에 첫영성체 학생들의 부모 면담이 있다. 면담은 오전에도 종종 잡혀 개인 시간을 갖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성당이 곧 집이니까요.” 직장과 삶이 구분된 ‘워라밸’을 중시하는 현대인들…. “그러한 직업 생활과 철저히 다른 것이 사목자의 삶”이라고 이 신부는 말했다. 성당이 출퇴근하는 직장이 아니라 먹고 자고 생활하는 집 자체가 되어 본당 공동체를 온 삶으로 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목적 고민도 생활 내내 계속된다. 6명뿐인 교리교사로 증가 추세인 초·중·고등부 학생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을지, 새로 들어온 청년들과 기존 청년들 사이를 어떻게 중재하고 사이좋게 묶어줄 수 있을지 그저 기도 속에서 답을 구한다. 주임신부와의 식사 시간은 그냥 밥을 먹기보다 그러한 고민을 나누고 조언을 얻는 자리다. “자기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신부의 역할”이라며 이 신부는 “최대한 경청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평일 저녁에 열리는 공동체 회합, 주일 청년 미사, 성가대 모임에는 꼭 참석한다. 또 먼저 나서서 청년들과 만남의 자리를 열기도 한다. ■ 가슴 뛰게 하는 것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신부님 덕분에 주말이면 성당을 찾게 돼요.” 4월 13일, 견학차 서울 아현동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을 찾은 본당 청년들이 잔뜩 들뜬 목소리로 입을 모았다. 청년들이 전례 공부 겸 신앙 안에서 친교를 다지고 주님과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자 이 신부가 마련한 행사다. 본당 대학생 및 청년 사목 담당 사제로서 이 신부도 “청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자기 단체에만 충실하기 쉬운 청년들이 사제의 노력을 통해 다른 청년 단체와 교류하게 되고, 교리교사 등 본당 활동에 나서기는 어려워하는 청년들이 공동체와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함께할 때 사목자로서 가장 뿌듯하다는 것이다. 사제의 길을 걷길 잘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은 이렇듯 예수님이 필요한 이웃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기쁨이다. 이 신부는 “특히 봉성체를 다닐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고백헀다. 주택가인 이문동, 도로변이 아닌 집을 들르려면 차를 탔다가도 굽이굽이 골목길을 직접 걷기도 해야 하지만 걸음에는 힘이 차오른다. 이 신부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한테도 ‘신부님이 잊지 않고 찾아와 주니 너무 감사하다’며 글썽이는 노인들의 뭉클한 진심이 전해져서”라고 말했다. “신부님 덕분에 그 할머님이 얼마나 평안하게 가셨는지 몰라요.” 한 선종 신자의 냉담했던 자녀가 이 신부의 봉성체 활동으로 다시 미사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희소식은 지금도 이 신부를 가슴 뛰게 한다. 이 신부는 “위로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선사해 주려고 내가 부르심을 받았구나" 하는 벅찬 감동에 오히려 제가 힘을 받는다”며 웃었다. ■ 사제의 삶이 처음이라 “신자들이 저 때문에 상처받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삶에는 예행연습이 없다. 이 신부도 사목자는 처음이라 많은 것이 힘겨울 때가 있다. 끊임없이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제의 삶이기에, 가장 힘겨운 것도 사람들과의 관계다. “그저 경청해야 하기에 가끔은 너무 많은 말을 듣게 되고,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 식별이 어려워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지 못할 때가 있다”고 이 신부는 토로했다. 잘해 주려던 진심이 오해로 돌아올 때 무겁게 짓누르는 속상함은 동료 사제들도 공감하는 사목자의 시련이다. 한때는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종일 침대에 눕고만 싶기도 했지만, 이 신부는 그때마다 서품받을 때의 첫 마음으로 돌아간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까지도 용서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선종일인 2005년 4월 2일을 되새기며, 가장 낮은 자세로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 성사와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제 생활의 본분대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도 늘 말씀에서 얻는다. 힘들 때마다 첫 마음으로 돌아가듯, 늘 원천에서 계시면서 끊임없이 격려하시는 주님께 의탁하며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성당을 거닐며 바치는 묵주기도 속에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또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오롯이 고독을 마주하며 바치는 묵상기도는 예수님이 이 신부 내면으로 말씀을 거시는 창구가 된다. “사제가 아닌 길을 걸었다면” 하는 회의감도 어느새 가라앉는다. 사람들의 어긋난 신체를 맞춰 주는 물리치료사도 한때 꿈꿨지만,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람들 내면을 아물게 하는 영적 치료사로서의 기쁨이 더 크게 차오른다. 그런 이 신부의 꿈은 여느 사제와 다르지 않다. 인간관계에 지칠 때 조용히 마음의 문을 닫기보다 더욱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제다운 사제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마음의 문을 닫기보다 예수님처럼 기다릴 줄 아는 사제로 소임하고 싶습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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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19 오후 3:07:52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