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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변진의 작가 | 2024-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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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보면 왜 이렇게 이야기하나 싶겠지만, 제 인생이 그랬어요. 그림은 제 언니가 잘 그렸어요. 제 남동생도 그림에 재주가 있었어요. 저만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못 받았어요. 대신 저는 어디에나 낙서를 했어요. 사람을 주로 그렸지요. 저는 그게 그림인 줄 알았어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 그렇게 예고에 들어갔는데, 동급생들은 다 천재더라고요. ‘아 그림은 저런 애들이 그리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고 저는 이론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을 예술학과로 진학했어요. 그런데 당시 정부에서 서울대 통폐합을 하면서 예술학과를 없앴어요. 문리대 미학과나 인류학과 아니면 미대 안에 있는 응용미술과나 조소과, 회화과로 전과해야 했어요. 그래도 예고를 나왔으니 회화과로 전과했어요. 하느님께서 ‘진의야, 네가 갈 길은 여기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대학 졸업 후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았는데, 이상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더라고요. 한양여대 전임강사로 들어간 후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어요. 동료 선생님이 제가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더러 ‘대성하실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이후 수원대로 옮기고 나서는 사람에 대해 열심히 연구했어요. 크로키도 정말 많이 그리고요. 하느님께서 그림 그리는 훈련을 시킨 것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선생님들 예고 시절 정말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서세옥 화백, 장선백 화백, 문학진 화백, 정창섭 화백 등이 당시 제 선생님들이셨어요. 성화도 많이 그린 분들이고요. 어느 분이 말씀하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 선생님께서 ‘그림을 그리려면 모든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을 그림으로 바라보라’고 하셨어요. 대상을 바라보며 나름 그림을 구상하는 거죠. 좋은 훈련이 됐어요. 그리고 ‘전시를 많이 보고 그림을 보는 눈을 열라’고도 하셨어요. 또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도 하셨어요. 많이 돌아다녀야 눈에 보이는 것을 다 담을 수 있다고요. 마지막으로는 빠른 음악을 들으면 좋다고 하셨어요. 느린 음악은 몸을 나태하게 한다고요. 이 가르침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참 좋은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이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처음에는 잘 안 믿었어요. 그런데 한 학생이 나중에 상을 받고 나서 제가 강조했던 내용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아버지께 물려받은 신앙 저는 아버지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았어요. 전에 고모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아버지의 외할머니가 흥선대원군 부인의 대모였다고 해요. 그런 신앙의 이력이 있는 만큼 아버지께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셨어요. 베네딕도 수도회가 백동, 지금의 혜화동에 수도원을 지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직업학교에도 다니셨어요. 당시 젊은이들이 일거리가 없으니 수사님들이 기술을 가르치신 거죠. 아버지는 거기서 목수 일을 배워서 가구공장을 차리셨어요. 아버지께서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큰 은혜를 입은 거지요. 오랜 신앙의 역사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미사에 가자고 하면 두말 안 하고 따라나섰어요. 50대에 들어선 매일 미사에 참례했어요. 중간에 빠지기도 했지만 한번도 주일 미사를 거르진 않았어요.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했죠. 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딸’이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아버지께서 좋은 말씀도 해주시고 저를 다정하게 보살피며 키우셨어요. 어머니의 사랑보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신앙도요. 결국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셨던 것이겠죠. 추상에서 구상으로 저는 처음에는 추상화를 많이 그렸어요. 자유롭게 창작을 하고 싶어서였죠. 그런데 1989년 가톨릭미술가회에 입회하고 나서는 구상 쪽으로 전향하게 됐어요. 종교적인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데 추상화로는 어렵더라고요. 한번은 가톨릭미술가회 전시회를 위한 그림을 그렸는데, 최종태 선생님이 ‘이게 사람인가?’ 하시더라고요. 종교미술을 추상보다는 좀 더 직관적으로 보여야 하잖아요? 그렇게 추상에서 구상으로 넘어가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전향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크로키 작업을 많이 한 것이 도움이 됐어요. 배론성지에 ‘순교자’라는 작품을 봉헌한 후 다양한 곳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어요. 중서울 사제평생교육원이나 가톨릭대학교에 많이 보냈지요. 특히 대작을 많이 했어요.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동안 성경을 8번 통독하고 이제 9번째 읽고 있어요. 이젠 크고 장엄한 그림보다는 어린이를 위한 성경 그림책에 들어갈 만한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꼭 어린이가 아니라도 성경 내용이 어려운 분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이만큼 키워주셨다고 생각해요. 미술 쪽으로 공부를 시키고 그림을 그리게 하시고요. 저의 아버지를 통해서요. 매일 묵주기도를 드리며 요셉 성인께도 기도드리고 있어요. ◆ 변진의 작가는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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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19 오후 3:07:52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