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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꿈 못다 피운 친구, “그리운 그 손 맞잡고 주님께 걸어갑니다” 2024-04-19



2014년 봄, 처음에는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다 멈춰버린 기분, 정지버튼을 누른 듯 멈춘 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 죽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그러나 정작 죽은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나 붙어 다녔던 단짝 친구, 함께 신부가 되자며 꿈을 나누던 그 친구는 세월호를 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럼에도 멈춘 듯했던 시간은 흘렀고, 올해도 다시 불어온 봄바람에 어김없이 벚꽃이 나부꼈다.


“딸랑.”


수원가톨릭대학교(이하 수원가대) 교정에서 만난 수원교구 심기윤(요한 사도) 부제는 문득 종소리가 들리는 언덕 위를 바라봤다. 세월호 희생자 고(故) 박성호(임마누엘)군의 이름을 딴 임마누엘경당에 달린 풍경(風磬)이 낸 소리였다.


심 부제는 “교정을 거닐며 기도하다가 종소리가 울리면 성호가 찾아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세월호 참사로 함께 사제의 꿈을 키우던 친구를 떠나보내고 10년 동안 사제의 길을 준비해온 심 부제를 임마누엘경당에서 만났다.



■ 친구 대신 온 경당


처음 만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심 부제와 성호는 늘 함께였다. 학교는 달랐지만 방과 후엔 늘 함께였고, 성당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곁에 있었다. 단짝 중의 단짝. 어찌나 둘이 붙어 다녔는지,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캠프나 프로그램 중에 모두가 어울릴 수 있도록 어떻게든 두 사람을 떼어 놓느라 애를 써야 했을 정도다.


늘 함께였고, ‘사제’라는 꿈도 함께 꿨다. 심 부제는 성호와 함께 꾸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신학교에 왔다. 그러나 성호는 오지 못했다. 성호의 이름을 담은 경당만 신학교에 왔다.


“참사 후에는 슬픔과 분노가 가득했고 세상이 차갑게만 보였어요. 그런데 임마누엘경당이 지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희망을 바라보게 됐던 것 같아요.”


심 부제는 2014년 경당이 처음 지어지던 때를 떠올렸다. 왜 성호에게,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 절망이 가득했던 그 시기.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 앞마당에 작은 나무 경당이 세워지고 있었다. 성호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자 ‘세월호가족지원네트워크’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이 함께했다. 하루하루, 나무판자가 세워지더니 지붕이 올라가고, 종이 달렸다. 심 부제는 그렇게 경당이 완성되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의 손이 거쳐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정말 많은 분들이 자신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슬픔을 함께하려고,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그들의 작은 사랑 하나하나가 크게 와 닿았고요. 절망의 유효기간은 짧고, 희망이 왜 희망인지를 배웠어요.”


2018년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철거되면서 임마누엘경당도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당시 안산대리구와 수원가대가 성호의 꿈을 담은 이 경당을 성호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신학교, 수원가대 교정에 이전하면서, 경당은 이곳에 자리 잡았다.


경당 옆에는 팽목항에 서 있던 세월호 십자가도 있다. 마찬가지로 팽목항에서 철거된 십자가를 수원가대가 2017년 교정에 받아들였다. 수원가대는 세월호 십자가를 경당 옆으로 옮겨 경당과 십자가 인근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경당 부근에는 벚꽃이 많아 봄이면 신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벚꽃 명소다. 성호 대신 온 경당. 심 부제는 “경당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슬픔과 위로가 공존하는 장소”라고 했다. 볼 때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성호와 친구들이 떠올라 슬프지만, 또 기도 안에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 함께 걷는 사제로의 길


“신학교 저학년 때는 ‘내가 성호 몫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성호가 그걸 원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제가 하느님 안에서 기쁘게 사는 게 성호가 원하는 것일 거예요. 성호는 그런 친구예요.”


단짝 성호가 떠난 지 10년이지만, 사제의 길을 향해 걷는 심 부제에게 성호는 여전히 곁을 함께하는 친구다. 그러나 친구의 몫을 대신 지고 간다는 생각은 없다. 심 부제에겐 이 길을 기쁘게 가는 것, 그게 성호가 바라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누구보다 성호와 단짝이었던 심 부제이기에 안다.


심 부제는 “만약 성호가 사제의 길을 걸었다면 아마 누구보다도 잘 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친구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제 인생의 롤모델이시지만, 성호는 또 다른 롤모델이었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고통 받고, 버려지고, 또 슬퍼서 울어야 하는데 울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곁에서 때로는 같이 울고, 때로는 위로하고, 또 그 안에서 다시 웃을 수 있게끔 힘을 주는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제게 많은 신부님들이 그래주셨듯이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사제의 꿈을 꿨지만, 세월호 참사는 심 부제에게 어떤 사제로 살 것인가에 대한 모습을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로 성호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을 잃고, 심 부제의 삶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상처는 더 깊어졌고, 마땅히 울어야 했지만, 울지도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느님은 어디 계신가’란 한탄이 저절로 튀어나오는 시간.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심 부제 곁에 있었다.


심 부제는 “많은 신부님들이, 수녀님들이, 신자분들이 곁에 계셨는데, 사실 그분들 성함이나 세례명도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그분들을 통해 곁에 하느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그분들처럼 제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억하게 해주는 신부님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부제품을 받은 심 부제는 이제 사제품을 받기 위한 마지막 과정을 밟고 있다. 성호가 떠난 지 10년, 사제로서 새롭게 길을 걷기 위해 다시 힘을 낸다. 그리고 그 길은 더 이상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


“성호야, 내 친구여서 고맙다. 그동안 표현은 못했지만, 사랑한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4-19 오후 3:07:52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