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관 전경. 가톨릭평화신문 DB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92석을 확보하며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됐다. 이로써 이들이 내놓은 공약이 어떻게 실현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생명·기후환경·복지 등 가톨릭교회가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행동하는 프로라이프가 마련한 낙태 관련 정부입법안 반대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생명·윤리
한국 교회는 2019년 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 결정 이후 낙태를 거부하는 의사나 의료기관의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미혼모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내용의 대체입법, 그리고 생명권을 국가가 직접 침해하는 형벌인 ‘사형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주교회의가 보낸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낙태죄 대체입법에 대해서는 ‘중립’, 사형제 폐지에 대해서는 ‘동의’라고 답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때 180석(비례 포함)을 얻었지만 대체입법도 사형제 법안도 처리하지 않았다. 따라서 야권이 법안 처리에 충분한 의석을 확보했고, 주교회의 답변에도 긍정적이었지만, 실제 22대 국회에서 이를 처리할지 불투명하다.
종교환경회의가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팻말시위를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기후·생태·환경
민주당은 2035년 국가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2%까지 줄이고,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 기후대응기금 7조 원 이상 확보, 기후에너지부 신설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에 적극 대응할 뜻을 내세웠다. 특히 민주당은 총선 정책공약집에서 친환경 재생에너지 대전환으로 ‘RE100’(기업의 사용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부 충당하는 캠페인)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또 설계 수명이 끝난 원자력(핵)발전소 폐쇄 및 신규 건설에 반대하는지를 물은 주교회의 질문에 대해 ‘동의’라고 답했다.
조국혁신당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 30%, 2050년 80%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현재 정부는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전 등 전기 생산 과정에서 직접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CFE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 등 야권이 원전 확대를 제한하는 쪽으로 법안을 추진할 경우, 정부와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법·정의·평화
민주당은 수사·기소권 분리, 검사의 기소·불기소 재량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 실질화 등 검찰개혁, 경찰의 민주적 통제 및 경찰국 폐지를 주장했다. 조국혁신당도 수사와 기소 분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강화를 통한 검찰 권력 분산과 견제, 검사장 직선제·기소배심제도, 검사의 직접 수사권 폐지를 주장했다. 또 국민 인권 보호와 더 큰 민주주의를 위한 ‘사법, 검찰, 경찰의 개혁 입법 필요성 여부''에 대한 주교회의 질의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매우 동의’라고 답했다. 따라서 충분한 의석을 확보한 만큼 야권이 이를 강력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부·여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검사장 직선제 등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따라서 22대 국회 개원 이후 공약 추진에 나설 경우 여당과 검찰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인 노란봉투법이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법안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플리커 제공
노동·복지
민주당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주4일제나 주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을 지원하고, 근로기준법에 ‘포괄임금제 금지’를 명문화하기로 했다. 또 요양병원 간병비를 우선 건강보험 적용 범위에 포함하고, 일반 상급병원 등으로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예금자당 1개의 생계비 계좌 개설을 허용하고, 생계비 계좌에 예치된 최저생계비 이하의 금액에 대해서는 압류를 금지하는 내용의 최저생계비 보호,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의 1억 원 대출도 약속했다. 원리금도 1자녀는 무이자, 2자녀는 50% 감면, 3자녀는 원리금 전액감면을 약속했다.
노인 공약으로는 원하는 사람 누구나 최소 주5일 경로당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교회의가 요청한 ‘노조법 제2, 3조’, 즉 노란봉투법 개정에 대해 민주당은 ‘동의’라고 답해 이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또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장애인권리 보장 기반을 마련하고,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적 생활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장기요양보험에 말기 환자의 간병과 동반을 위한 서비스(호스피스, 영적 돌봄 전문가 제도) 추가 도입도 동의한 바 있다.
생명의 가치 염두에 두고 의정 펼치길
교회 인사들은 국민 모두를 품는 정치, 생명의 가치를 염두에 둔 의정을 펼쳐달라고 당선자들에게 요청했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박은호 신부는 “지난 국회에서 낙태죄는 폐지되고, 의사조력자살을 법제화하는 법률안이 발의됐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생명이 크나큰 위협에 직면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 의원들은 경제적 이익과 기술 발전을 명목으로 생명의 가치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주길 바라며, 특별히 초고령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어느 때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설과 인력 확충 또한 절실하다”고 전했다.
오현화(안젤라) 가톨릭기후행동 공동대표는 “‘기후정치’를 전면에 내세운 녹색정의당이 원외정당이 된 것이 아쉽다”면서도 “22대 국회가 오늘의 세대, 지속적인 국가와 세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오 대표는 “국회가 함께 힘을 모아 추진해야 하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특히 기후 위기와 탈핵은 더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안이며, 당장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또 “모두가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시국임에도 19일 삼척석탄화력발전소가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며 “현실적인 정책은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빠르고 과감한 전환이며, 이를 위한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 회장 유덕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 수도원장) 아빠스는 생명을 존중하는 국민 의식 함양에 힘을 보태달라고 당부했다. 유 아빠스는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이 속한 당만을 위한 민생을 운운하다 보니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졌다”면서 “국민이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족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허영엽 신부는 언론 기고 및 페이스북에 올린 ‘새 선량(選良)들에게 바란다’란 글에서 “국회의원은 당선된 순간부터 사적 욕심뿐 아니라 자신의 정당과 신념을 떠나 국민 전체를 마음에 담아야 하며, 시선을 둘 오직 한 곳은 국민의 행복한 삶"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가 가르쳐 준 교훈 중 하나가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공동체에서 공존은 중요하고 절대적인 가치이며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내치거나 단절해서는 안 된다”며 “공존을 위해서는 당연히 정당한 타협과 효율적인 양보가 필요하고 이는 정치에 꼭 필요한 기본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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