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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물 위의 순례길 | 2024-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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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내내 이어진 장마로 주말에 예정된 순례길이 걱정되는 시간 속에 순례당일 2023년 6월 4일, 비는 멈추었으나 내리쬐는 불볕더위에 순례자들은 꽁꽁 얼려온 얼음물로 갈증을 해소하며 걸어야만 했다. 출발지 미리내성지에 도착 후 성지 해설사님의 해설을 듣고 미사 봉헌 후 순례는 시작됐다. 녹음이 우거진 미산저수지 둘레길 중 적절한 공간에서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이미 모내기를 마치고 제법 자리를 잡고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새싹 벼들과 눈맞춤하며 발걸음을 이어갔다. 6월의 강렬한 햇살은 때로는 힘들게도 하지만 순례 내내 시원한 바람을 솔솔 보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묵주기도로 각자의 지향을 두며 걸어갔다. 얼마쯤 걸었을 때 진위천 하상도로에 도착했다. 이번 주중에 내린 장마로 도로의 20미터 정도가 물에 잠겨 있어서 난감했으며 다른 곳으로 우회할 도로는 없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물 위를 걸어서 건너가기로 결정했다. 동행하신 두 분 수녀님을 비롯하여 각자 양말과 등산화를 벗어 손에 들고, 또 한 손에는 등산 스틱을 들고,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맨발로 물 위를 걸었다.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으나 물속에 발을 넣고 걷다 보니 어느새 더위는 사라지고 서로는 얼굴을 마주보며 이 신비로운 경험에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마태 14, 29~30)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보면 한 명, 한 명 다 하나같이 부족하다. 우리 인간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는 베드로 같은 인물을 장으로 세워 놓으면 정말 큰일 난다. 다혈질에 겁쟁이이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제자들 가운데 으뜸으로 세우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느님은 완벽한 도구를 만들어 두고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도구들을 가지고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우리 순례자들에게 진위천 하상도로는 깊지 않은 얕은 강물이었고 폭염 속에 24.9km의 장거리 구간이라 더 힘들었지만, 순례 중 맨발로 물 위를 걸었던 이 코스도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한 걸음 나아가고자 했으며 주님께서는 순례자 모두에게 잊지 못할 소중한 체험으로 간직하게 해주셨다. 지속적인 체험으로 진행되는 도보순례길, 등대 빛을 발견하고 등대를 향해 방향을 전환했다 해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등대에 가까이 도달하기 위한 항해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순례길, 성스런 의미가 깃들여 있는 성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순례에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함 자체보다는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주님과 함께한다. 글 _ 박수희 아녜스(수원교구 디딤길팀 책임봉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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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16 오후 3:12:08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