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합니다. 침몰해 가는 배에서 속옷만 입은 선장은 제일 먼저 탈출합니다. 수학여행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300여 명의 생명은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내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는 팽목항은 눈물의 바다가 됩니다. 차오르는 슬픔에 뭐라도 해야 한다며 시민들은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아픔을 간직한 세월호는 바다에서 인양되어 목포 신항에 정박합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흘러 어느새 1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때문인지 추모의 마음도 무디어져만 갑니다. 가만히 있지 말자며, 유가족과 함께하자며 가방에 매달았던 노란 리본은 색이 바래지고 낡았습니다. 당시 재난 콘트롤타워에 있던 이들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들만 여전히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약이라며 참사의 아픔에 무디어질 줄 알았던 10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월호 10주기에도 여전히 국가의 존재 이유와 안전을 말합니다.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159명의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이태원은 세월호였습니다. 안전불감증과 책임자의 무능과 무책임이 있었습니다.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로하지 못하고 정부는 감추기에 바빴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를 대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도 이태원을 대했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우리는 생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태원에서도 국가의 존재 이유를 찾았습니다.
세월호와 이태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안전과 생명을 요구합니다. spc의 노동자, 구의역의 김군, 태안발전소의 김용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처럼 우리의 보통네 시민들은 국가에 안전을 요구합니다. 노동자들은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고, 아프면 출근이 아닌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민들은 탐욕의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시민들은 우리의 일상을 세월호 이태원으로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고 세상에 묻습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 10주기인 올해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10주년이기도 합니다. 광화문광장 한 가운데서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기억해봅니다. 종교인으로 권력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고 중립을 지키라는 요구에 교황은 고통앞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직접 제의에 세월호 뺏지를 달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교황이 보여준 위로의 출발점은 기억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기억은 힘이 있습니다. 세월호 이태원만이 아니라 세상의 아프고 힘든 이들을 기억해야합니다. 기억하고 함께 걸어야 합니다. 손을 잡고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어야 합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 10년이 지나도 세월호 >입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며 우리도 세상의 가장 작은이들을 기억하고 함께하기를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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