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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천진암성지 디딤길 | 2024-0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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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 중 18세기 후반에 성호학파 녹암 권철신이 이끄는 신진 학자들이 주어사와 천진암에서 강학모임을 가졌고, 이 모임은 조선에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자 한국 천주교회 설립을 위한 선행적 바탕이 됐다. 지난해 부활 4주간 토요일이었던 2023년 5월 6일 디딤길의 예정된 순례는 7-1코스로, 천진암 성지에서 앵자봉(667m) 정상을 넘어 산북성당에 도착해 마무리되는 코스였다. 순례 전날부터 이미 많은 비가 내렸고 순례 당일 주말 아침에도 강풍과 함께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는 요란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망설임 없이 순례길에 나섰다. 순례는 천진암성지 입구에 있는 광암성당에서 12시 미사 봉헌으로 시작됐다. 미사 시작 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창립선조 5위 묘역(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에 먼저 올랐다. 1979년에 처음 이벽의 묘가 이장되었고, 1981년에는 정약종,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의 묘가 이장되면서 1982년 창립선조 5위 묘비가 건립된 곳이다. 5위 묘역에 주모경을 바친 후 세계평화의 성모상 앞에서 환희의 신비 1단부터 5단까지 바쳤다. 묵주기도 후 천진암성지 입구에 있는 광암성당으로 다시 내려와 12시 미사 봉헌 후 시작기도와 함께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됐다. 가르멜 수녀원을 지나면서 천진암 계곡에 다다랐다. 전날과 당일 쏟아진 폭우로 계곡마다 흘러넘치는 우렁찬 물줄기 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5월의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초록의 계절을 느끼며 땀방울을 식혔다. 20여 년 전 직장 산악회에서 등산을 목적으로 걸었던 앵자봉이었다. 하산 길에 멧돼지를 만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던 그 길을, 우리는 우비를 입었고 한 손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등에는 배낭을 메고 앵자봉 정상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계속 퍼붓는 비였지만 우리의 발걸음 기도를 멈추게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 뿐이었다. 낙엽이 촉촉이 젖어 오히려 말랐을 때보다 겸손되이 납작 엎드려 걷기에는 훨씬 나았다. 드디어 앵자봉 정상 해발 667m에 도착했고 오월의 연분홍 새색시 산철쭉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줬다. 마치 이벽의 열정이 한밤중에 주어사에서 천진암으로 향하였듯이 우리의 순례도 주님께서 열정으로 인도하시는 게 아닐까? “곧 하늘에서 비와 열매를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사도행전 14,17) 최종 도착지 산북성당까지 우중 순례였으나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무사하게 잘 마쳤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피정의 순례길을 우리는 늘 기다린다. 글 _ 박수희 아녜스(수원교구 디딤길팀 책임봉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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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4-11 오전 11:32:19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