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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면 참사는 반복… 힘들고 아프지만 팽목항 지키고 기억해야죠” 2024-04-11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학생 고 권지혜(프란치스카)양 엄마 이정숙(리타)씨가 팽목항 부두에 설치된 기다림의 의자에 앉아 글귀를 바라보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학생 고 김웅기(재준 이냐시오)군 엄마 윤옥희(데레사)씨가 팽목항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아들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


고 권지혜 양 어머니 이정숙 리타
참사 후 하느님 원망해
부활 대축일 이틀 후 지상으로 올라온 딸
그 후로는 기도 안에서 살아

고 김웅기 군 어머니 윤옥희 데레사
아들의 마지막 말 ‘모두 사랑합니다’
그 말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엄마 몫
안전사회 건설도 그 연장선상에




통한의 바다, 팽목항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다시 찾은 팽목항(현 진도항). 녹슨 추모 조형물과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란 빛바랜 문구들이 10년의 세월을 말해준다. 진도항 여객터미널 임시주차장 귀퉁이엔 ‘세월호 팽목기억관’, ‘팽목가족식당’, ‘팽목성당’이 듬성듬성 자리하며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드넓은 항구에 초라하게 자리 잡은 컨테이너 건물들. 그곳에 유가족이 있었다. 10년이 지나도 떠나보낸 가족과 계속 함께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이들이 올라온 곳이니 우리가 기억해야죠. 바다를 향해 소리도 지르고, 목청껏 이름도 부릅니다.”

“지혜야, 엄마야!”, “웅기야, 엄마 왔어!”

유가족들은 참사 후 지금까지 2~3명씩 짝을 이뤄 돌아가면서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기자가 내려간 날 만난 유가족은 단원고 2학년 10반 고 권지혜(프란치스카)양 엄마 이정숙(리타)씨와 2학년 4반 고 김웅기(재준 이냐시오)군 엄마 윤옥희(데레사)씨.

내려오는 데 7시간에서 길게는 10시간도 걸리고, 냉기 가득한 바닥에서 쪽잠을 자야 할 때도 있지만, 유가족에게 이러한 상황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잊히면 참사는 반복됩니다. 힘들고 아프지만 지켜서 기억해야죠. 그게 저희 몫이고요.”

오전까지 비가 내려 추적대는 흙바닥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 위에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노란 배지들이 작게나마 빛나고 있었다. 엄마들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그날의 기억을 결코 놓을 수 없다.



상처와 연대가 뒤섞인 10년

‘징글징글하다.’, ‘아직도 세월호 얘기 하냐.’, ‘어디까지 더 해줘야 하나.’
유가족이 10년간 들어온 혐오와 조롱들이다. 이씨는 “자식 잃은 아픔도 아픔이지만, 가까운 지인들에게 말과 글로 받는 상처도 참 아프더라”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시선은 더 커져갔다. 유가족들은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2년 전 안산시에 있는 몇몇 동네를 찾아갔다. 이씨는 “떠도는 소문에 대해 주민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까지 했다”면서 “어떠한 질문에도 모두 답하고 투명하게 대화하고 나니, 그제야 진심을 알아주시곤 응원해 주셨다”고 했다. 고통과 오해에 대화가 유일한 치유의 묘약이 된 것이다.

유가족의 궁극적인 바람은 ‘생명 존중, 안전사회 건설’이다. 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진상규명’과 ‘4·16 생명안전공원’ 조성,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2015년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017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2018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꾸려졌다. 윤씨는 “특조위를 구성했지만 독립적이고 전문적이지 못했던 한계로 인해 진상규명은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며 “그러는 동안 참사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행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한 가정의 부모였고 학부모였던 이들은 이제 거리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겁니다.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이 곁에 계셔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남인데도 말이죠. 여기 ‘팽목성당’만 해도 10년을 지키고 계셨으니까요. 특히 신부님·수녀님을 비롯한 신자들은 어느 자리에서든 늘 함께해 주시고, 목소리를 내주셨어요.”



별이 된 아이들

10년이 흘렀지만, 자녀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지다 결국 눈물이 쏟아진다.
“지혜를 가졌을 때 예비신자 교리를 듣기 시작해서 주님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았어요. 이틀 후에 지혜가 태어났습니다. 얼마나 밝고 예뻤는지 몰라요. 중고등부 미사에 참여하고도 주일 새벽 미사 반주를 할 만큼 성당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학교 가기 전에는 아무리 바빠도 엄마 불러서 꼭 십자 성호를 그어줬어요. 아빠와 언니에게는 자기가 기도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도 시켜줬고요. 지혜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지혜가….”

이씨는 “참사 후 하느님을 원망하고 욕까지 퍼부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내 희생자 수습을 기다리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혜는 태어났을 때와 같이 주님 부활 대축일 이틀 후 지상으로 올라와 엄마 곁에 왔다. “그 후로는 계속 기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윤씨 역시 아들 얘기에 연신 눈물을 훔치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웅기는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직계 후손입니다. 어릴 때부터 성당이 놀이터였고, 그만큼 신앙도 두터웠습니다.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는데, 싫다는 표현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착하고 남을 배려하는 아이였어요.”

윤씨는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다”며 “성당만 가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서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팽목성당’에는 꼭 들러서 기도드린다. “희생자들이 올라온 이 자리에서 다시는 그날의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매번 절실히 기도드립니다. 한편으론 참사 후 날카로워진 마음이 여기만 오면 누그러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저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힘 모아 주세요”

“모두 사랑합니다.”
웅기가 학교 SNS 단체 대화방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마지막 순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윤씨는 아들이 남긴 마지막 말이 곧 앞으로 살아내야 할 엄마의 몫이라고 밝혔다.
“부족하지만 개인적으론 주변 사람들에게 웅기의 말을 실천하려 합니다. 안전사회 건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요.”
그러면서 윤씨는 “이젠 어떤 행사를 해도 안전이 제일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며 “개인 의식과 함께 법과 제도도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20주기, 30주기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씨도 “참사가 발생했을 때 심리적 도움을 준다든지, 연대의 손길이 자연스레 뻗치고 있는 상황들을 본다”며 “억울한 죽음이 덜 일어나도록 계속 힘을 보태겠다”고 다짐했다.
10주기 기억식을 앞두고 있는 이들은 그간의 시간을 회상하면서 다시금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어제도 저희끼리 이야기했어요. 영정 사진 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는 걸 보니, 시간이 흐르긴 흘렀구나 하고요. 시간이 약이라는 말 참 듣기 싫었는데, 이 분위기가 10년의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주기 행사 때 다시 한 번 마음을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맞은편에선 비난의 목소리도 분명 나올 겁니다. 손가락질하시더라도, 그날만큼은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별이 된 아이들과 앞으로 살아갈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말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4-11 오전 11:32:1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