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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은 다른 세상과의 연결고리이며 화해의 감각능력 | 2024-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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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을 판다고 하여 ‘감성팔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감성이 파는 것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상업적인 광고에서부터 이웃을 돕는 자선 모금까지 ‘감성’에 기대는 전략에 집중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그리고 성직자들까지 감성 소통이 이 시대의 필수영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감성은 시각과 청각의 어떤 특정 감각에서 느껴지는 ‘감정’과는 차이가 있다. 감성은 외부의 지각정보에 의해 고유한 나의 경험과 함께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정서적 반응이다. 감성을 영어로 ‘Sensibility’라고 한다. 총체적으로 감각(sense)할 수 있는 능력(ability)이다. 감성은 보고 듣는 것만이 아닌 직접 만져지는 촉감에서도 온다. 시각과 청각으로 지나치게 ‘감성’을 자극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촉각의 경험을 소외시킨 ‘감성’을 너무 비싸게 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시각장애인 헬렌 켈러는 숲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나무에 손을 대면 나무가 뿌리를 통해 물을 빨아올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세상까지 경험하게 하는 촉감 경험이다.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인에 비해 촉각이 매우 발달하여 감성이 뛰어나다. 푸른 나무를 보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으면 뇌에서 정서적 안정을 주는 알파파가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감성은 단순히 ‘좋다’라는 감정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까지 감각하고 외부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이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감성은 외부세계와 인간의 인지 세계를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외부와의 소통능력을 ‘감수성’이라고도 표현한다. 요즘에는 인권·환경·성인지·젠더 감수성 등 다양한 문제의식에 깨어있으라고 요구할 때 ‘감수성’을 강조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촉각’을 배제한 감각경험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스크린으로 듣고 보는 감각에 노출되어 충동구매나 숏폼(Short-form)에 열광하기도 한다. 감각은 본능에 더 가까워 ‘먹고 싶다’, ‘사고 싶다’, ‘보고 싶다’라는 일시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감성은 내면에 새겨진 감각 경험 그리고 생각과 행동과 함께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표출되는 반응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끼는 상상과 공감을 동원하는 마음의 능력이다. 가장 원초적 감각인 촉각은 감수성과 상상력에 많은 영향을 준다. 촉각 경험이 없는 상상은 자칫 공상이 된다.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아도 삶의 변화가 없는 이유는 감수성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감성이 고갈되면 고통받는 사람의 눈물을 눈물샘에서 나오는 분비물 정도로만 인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외부 세상과 연결된 감성은 영적 세상으로 들어간다. 성경을 읽으면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대화한다.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토론도 하고 감동도 받는다. 외부 세상에 대한 애정을 감수성으로 꽃피우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감각한다. 감수성은 다른 세상과의 연결고리이며 화해의 감각능력이다. 바빠서 무심했고 몰라서 판단하고 미워했던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챈다. 그런데 이 감수성은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훈련을 통한 결과다. 학습하고 배우려는 노력으로 얻어낸 능력이다. 디지털 세상은 참 편하다. 넘어지는 일이 없어 아프지도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선택할 수 있고 시각과 청각만 자극하면 가짜도 진짜처럼 실재감을 느끼게 한다. 몸은 진짜 감각해서 얻어내는 진실을 잃고 일시적으로 감정만 즐겁게 해준다. 결국 촉각이 제외된 감각은 쉽게 ‘감성팔이’에 넘어간다. 과잉된 기분만 넘치는 가짜 ‘감성’을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엔 인공지능 개발 분야에서 인간처럼 느끼고 공감하는 디지털 인간을 만들어내겠다고 한다. 게다가 ‘메타소울(metasoul)’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메타소울로 가상현실에서 각자의 내적 자아를 반영한 고유한 디지털 영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영혼’까지 만들어 팔겠다는 말이다. ‘감성팔이’를 넘어 ‘영혼팔이’까지 시작된 셈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우리의 감수성, 안녕한지요? 사실 감성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내가 깨우지 않으면 영원히 잠자고 있을 겁니다. 다행히 감성은 노력하면 깨어나서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우선은 소소하고 밋밋하고 지루하고 심심한 것들과 소통하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겠습니다. 감성은 본능에 가까운 감정과 달리 의식적으로 깨어 노력해서 키워야 하는데요. 무엇보다 자연과 가까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요즘, 카메라로 담기보다 먼저 나의 오감에 담으려는 노력, 어떨까요? 온몸으로 느껴보는 거죠. 그리고 대화를 시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녕?“ “너 참 예쁘다” 이런 대화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느낌이 있어 참 좋습니다. 공기와 바람의 결도 느껴보세요. 나무 한 그루, 구름 하나, 꽃 하나와 교감하면서 음미해보세요. 내 안의 감성이 깨어나면 마음이 정화되고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겁니다. 이렇게 깨어난 감수성은 가족과 이웃의 마음으로도 이어지고 영성의 문턱까지 옮겨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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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09 오후 4:12:03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