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ws

  • 전례성사
  • 가톨릭성미술
  • 가톨릭성인
  • 성당/성지
  • 일반갤러리
  • gallery1898

알림

0

  •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글로벌칼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12년째 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24-04-09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월 19일 즉위 11주년을 맞았다. 개혁적이며, 다소 색다른 그의 교황직이 12년째에 들어 들어섰다는 말이다.

 

 

12라는 숫자는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경전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모두 187번 나온다. 이스라엘의 12지파, 12명의 예언자, 12사도 등이 대표적이다. 예수님께서는 12살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교사들과 말씀을 나눴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시고 남은 빵이 12 광주리였다. 특히 요한 묵시록에는 12라는 숫자가 22번 나오는데, 주님의 권위를 아주 잘 상징하는 완벽한 숫자로 제시되고 있다.

 

 

12라는 숫자는 비종교적인 세속 사회에서도 중요한 의미와 상징을 지닌다. 1년에 12달이 있고, 별자리도 12개다. 시간을 계산하는 데에도 12진법을 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 12년째에 무슨 일을 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즉위 12년째를 맞았던 교황들이 그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해 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부터 거꾸로 확인해 보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즉위 12년째에 접어들자마자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이 시작됐으며, 결국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됐다. 폴란드 크라쿠프대교구장이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공산주의 아래에서 살았다. 장벽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교황이 큰 역할을 했다고 떠받들었다.

 

 

1989년 10월 16일부터 이듬해 10월 15일까지 성 요한 바오로 요한 교황의 12년째 해, 냉전은 종식됐지만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30년 동안 중동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돼 버렸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중동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1963년 6월 21일 교황으로 선출돼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이끈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즉위 12년째 되던 1975년 희년을 맞았다. 당시 76살이던 교황은 교회와 세상의 격동기를 겪었다.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교황의 권위에 반항했다. 교회 안에서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교황은 공의회 폐막 10주년과 희년을 맞아 공의회를 통한 개혁을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할지를 두고 분열된 교회에서 평화를 되찾고자 했다. 또한 세상의 평화도 기원했다. 당시는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신자에 대한 영국 개신교 신자들의 박해가 최고조에 이르렀고, 키프로스에서는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전쟁이 벌어졌다. 앙골라에서는 내전이 번졌다.

 

 

나머지 세 교황은 모두 비오라는 이름을 썼다. 1939년부터 1958년까지 재위했던 비오 12세 교황은 자신의 생일이던 1950년 3월 2일 재위 11주년을 맞았다. 당시는 희년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여서 사람들은 평화를 갈망했다. ‘천사같은 양치기’(Pastor Angelicus)였던 비오 12세 교황은 12년째 되던 해 회칙 4개를 발표했다. 두 개는 평화에 관한 것이었다. 그해 교황은 교황청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발표했는데, 성모 승천을 교회의 교리로 선언했다.

 

 

비오 11세 교황의 즉위 12년째는 1933년이었는데, 그 해도 희년이었다. 비오 11세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전간기였던 1933년 7월 20일 당시 교황청 국무원 총리(훗날 비오 12세 교황)의 도움을 받아 히틀러와 협정을 맺었다. 교황은 히틀러에게 공산주의 확산 저지를 기대했다. 하지만 훗날 이를 후회했다.

 

 

마지막으로 성 비오 10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찬가지로 로마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한 적이 없던 ‘아웃사이더’ 교황이었다. 그는 1914년 8월 4일 교황 선출 11주년을 맞았다.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를 사목 표어를 정하고 정치적 지도자보다 영적 지도자가 되길 바랐던 그는 교황청 조직을 개혁하고 간소화했으며, 성체를 자주 영하도록 건했다. 하지만 그의 재위 12년째는 16일밖에 안 됐다. 그는 1914년 8월 20일 선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12년째는 어떤 모습일까? 87세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위 12년째를 지낸 20세기 교황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가장 오래 살았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84세에 선종했다. 하지만 그의 나이와 악화되는 건강 상태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어느 교황보다 더 큰 투지를 보이고 있다. 과연 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 판에 박힌 말처럼 보이지만,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Second alt text

 

 

글 _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


 

[가톨릭신문 2024-04-09 오전 11:45:3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