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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159) 흥미로운 프란치스코의 부활 우르비 엣 오르비 2024-04-08

 

교황이 주님 부활 대축일에 발표하는 ‘우르비 엣 오르비’는 대개 그 해 지구촌 상황을 조망하는 교황의 가장 중요한 외교 성명으로 이해된다. 우르비 엣 오르비에는 교황이 가장 강조하는 점을 밝히기에 이는 교황청의 현재 외교적·지정학적 의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부활 우르비 엣 오르비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보는 일은 흥미로울 것이다.

 

 

우선 교황은 새로운 외교적 계획이나 제안을 발표하지 않았다. 외교적 제안이라고 할 정도라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포괄적인 포로 교환 제안뿐이었다. 현재 러시아에는 약 4000명의 우크라이나 군인 포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절반은 2022년 마리우폴 함락 때 잡혔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포로 수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데, 러시아 군인 수천 명이 우크라이나에 잡히거나 항복한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1월 말, 양국은 아랍에미리트의 중재로 약 200명의 포로를 교환했다. 또 지난해처럼 정교회의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대규모 포로 교환이 이뤄질 수도 있다. 올해 정교회 주님 부활 대축일은 5월 5일이다.

 

 

교황은 이번 우르비 엣 오르비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에 대해 공평하게 언급하려 노력했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분노를 터뜨렸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을 압박해 600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받아내려는 때에 교황이 ‘재무장’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최우선 과제는 새로운 무기 도입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가 무기 도입을 위해 애쓰는 상황에서 교황의 말이 먹힐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교황의 노력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는 무기로 이뤄질 수 없다”는 교황의 수사는 중립적이고 상냥한 말로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또 교황이 언급하지 않은 지역과 민족을 주목할 만하다. 교황은 가자 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즉각적인 휴전을 요청해, 성지와 성지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교황은 시리아와 레바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이티를 비롯해 수단과 아프리카의 뿔 지역, 콩코민주공화국의 키부 지역, 모잠비크의 카보 델가도 등 아프리카의 분쟁 지역을 언급했다. 또 억압받는 미얀마의 로향야족에 대해서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사라지길” 기도했다. 이 외에 교황은 인신매매와 식량 부족, 기후위기, 테러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반면, 교황은 미얀마의 로힝야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비슷하게 억압받고 있는 중국의 위구르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대만을 향한 중국의 ‘회색지대’(gray zone) 전술에 대항해 대만이 미사일 훈련을 하는데도 남중국해 지역의 긴장 완화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교황은 인도의 마니푸르주를 포함해 소수인 그리스도인을 향한 공격이 이어지는 인도의 상황에 대해서도 눈을 감았다. 힌두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공격해 300개 이상의 교회가 파괴됐다. 인도에서는 다음 달 선거가 열리는데,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친힌두 성향의 인도인민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포함해 인도의 소수 종교인들은 인도에서의 종교자유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들 나라의 상황을 언급하지 않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중국과 인도가 교황청의 중요한 대화상대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공공연한 비난이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고 선의로 한 이야기가 상태를 나쁘게 할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교황은 니카라과 상황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켰다. 만약 교황이 대놓고 니카라과 정부를 비난하면 가톨릭교회를 향한 박해는 더 심해질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올해 부활 우르비 엣 오르비 담화에는 도움이 된다면 목소리를 높이고 때로는 침묵하는 줄타기를 하는 의도가 보였다. 신중함이 용기보다 더 나아 보이기 때문이다. 교황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췄는가에 대해서는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교황의 행동은 복잡한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4-08 오후 7:32:0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