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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스타니슬라오 (4월 11일) 2024-04-03
 
스타니슬라오 성인은 신자 베드로를 무덤에서 깨어나게 한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진=굿뉴스


스타니슬라오 성인은 폴란드 크라쿠프 교외에 있는 슈체파노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신심 깊은 부모로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교가 된 뒤에도 열정적으로 설교하고 엄격한 고행을 실천했고 유산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당시 폴란드를 다스리던 볼레수아프 2세 왕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폭력과 범죄에 빠져들었고, 타락한 행동을 많이 보였습니다. 누구도 왕에게 직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타니슬라오는 왕의 잔학성과 부도덕성을 용감하게 비판했습니다. 왕은 거짓으로 회개한 척 하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아름답다고 소문난 한 귀족 부인을 궁으로 납치했습니다. 스타니슬라오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공식적으로 왕을 파문하기로 했습니다.

분노가 치민 왕은 1079년 부하들을 대동해 크라쿠프의 성 미카엘 대성당에 들이닥쳐 미사를 봉헌하던 스타니슬라오를 끌어내 살해하였습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왕은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하고 들판에 내던졌습니다. 그러자 네 마리의 독수리가 나타나 스타니슬라오의 시신을 지켰고, 사제들과 신자들은 그의 시신을 무사히 수습하였습니다. 이후 1088년 람베르투스 3세 주교는 스타니슬라오의 유해를 성 미카엘 성당에 안치했습니다. 왕은 스타니슬라오를 살해한 일로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에 의해 파문되었고, 전국적인 분노가 이어져 폐위된 후 헝가리로 피신했습니다. 결국 그는 오시아크에 있는 베네딕도회에서 여생을 참회하며 살다 교황의 사면을 받았다고 합니다. 1245년 스타니슬라오의 유해는 크라쿠프의 바벨 대성당으로 옮겨졌고, 13세기 초부터 시성 절차가 시작되어 1253년 인노첸시오 4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베드로라는 신자를 소생시키는 모습으로 종종 표현되는데, 이는 그와 관련한 기적을 배경으로 합니다. 스타니슬라오는 계약서 없이 두 명의 증인만 배석한 채 베드로라는 신자에게 토지를 매입한 적이 있었습니다. 왕은 베드로의 자손들을 부추겨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하도록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스타니슬라오는 재판관에게 사흘의 말미를 주면 죽은 베드로를 법정에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스타니슬라오는 베드로의 무덤을 찾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일어날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죽음에서 깨어나 법정에서 정상적으로 땅을 팔았음을 증언하고 자손들을 꾸짖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마친 후에는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스타니슬라오는 최초의 폴란드 출신 성인입니다. 이에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받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4-03 오후 2:32:0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