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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일하고 자부심 드높이… 고독감도 떨쳐냈다 2024-04-03


 
사회적협동조합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의 ‘달려가는 희망 자동차’ 활동 모습.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 제공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요? 우리는 지구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는 최첨병입니다.”

사회적협동조합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이사장 남해윤 신부)에서 활동하는 노인들은 “협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고 삶의 많은 부분이 변화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조합이 대신 폐자원을 재활용센터에 전달해준 덕분에 가파른 경사를 위태롭게 다닐 때보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됐고, 여기에 소득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아가 조합 활동을 하면서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다는 ‘고독감’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노인들도 있다. 이제는 ‘폐지를 줍는 사람’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보전하는 활동가’라는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부활 시기를 맞아 ‘폐지 줍기''를 ‘지구를 살리는 활동’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났다.

서울 종로구 무악동의 한 골목길. 빈 용달 트럭 하나가 요란스레 가파른 경사를 올라간다. 사회적협동조합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 곽영재(요한 사도) 팀장이 폐지 줍는 노인들을 만나기 위해 운전하는 트럭이다.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무악동은 한때 ‘달동네’라고 불리던 곳. 젊은 청년들도 다니기 버거울 정도로 비좁고 아찔한 경사가 곳곳에 이어지는 마을이다. 협동조합이 2018년 ‘달려가는 희망 자동차 사업’에 진출해 폐자원 대리 수거 사업을 시작하기 전엔 마을 노인들이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오고 가던 길이다.

이날은 조합원 김분심(70) 할머니가 모아둔 폐자원을 거두러 가는 날. 조합은 일주일에 1~2번꼴로 폐자원을 수거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무악동선교본당 인근에 위치한 조합 사무실에서 출발해 가파른 골목을 오르내리길 5분여. 마침내 김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다. 한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김 할머니의 집 역시 가파른 골목 한가운데에 있다.

박 팀장이 조심스럽게 주차를 마치자 주위에 있던 어르신 2명이 김 할머니와 함께 쌓아둔 폐자원을 하나둘 트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집 근처 공터부터 주차장 한 켠에 빈 공간까지, 상자와 헌 옷, 각종 철제 제품이 곳곳에 가득했다. 이 가운데 폐자원 수집가들에게 ‘먹발’이라 불리는 A4용지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상자나 일반 종이가 1㎏당 80~120원인데 비해, A4용지는 230원을 받을 수 있는 ‘효자’다. 이렇게 작업하기를 1시간. 약 500㎏에 이르는 폐자원이 트럭에 한가득 실렸다. 조합원들은 “이 정도 양이면 15~18만 원을 벌 수 있다”고 귀띔했다. 가득 찬 폐자원들을 바라보며 할머니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 월례회의에 참석한 어르신들.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 제공

무악동에서는 25명 안팎의 어르신들이 폐지를 줍는 일로 생계를 잇고 있다. 이 가운데 20명의 어르신이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의 조합원 또는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폐지를 모은 이들의 폐지를 수거하고 판매하는 일을 돕고 있다. 모두 65세 이상의 고령층으로 80~90대 노인이 많다.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들의 경제상황은 대부분 열악하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023년 12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폐지 수집 노인은 4만 2000명으로 추정된다. 폐지 수집 노인의 소득은 전체 노인 평균 소득에 비해 턱없이 적다. 폐지 수집 노인의 월평균 개인소득은 약 74만 2000원으로, 전체 노인의 월평균 개인 소득(129만 8000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의 생계와 활동을 돕는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협동조합은 주변 재활용센터보다 높은 가격을 주는 센터를 찾아 폐자원을 판매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폐자원 단가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어려운 상황이지만, 조합은 여전히 주변 센터보다 20~30% 높은 가격으로 폐자원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 대금은 전액 어르신들에게 돌려준다.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소속으로, 가난한 지역민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펼치던 ‘독립문 평화의 집’에서 출발했다. 2018년 당시 생계형 폐지수집 어르신이 거둔 폐지를 인근 재활용센터로 운반하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후 어르신들을 도울 방법을 찾던 공동체가 ‘달려가는 희망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것이 협동조합의 출발이다.

강경규(프란치스코)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 상임이사는 “당시 무악동에서 거둔 폐지 때문에 지역 환경이 더러워진다고 민원을 넣는 주민들이 있어 한창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면서 “주민들의 갈등을 해결하고 이분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차량을 지원하는 활동에 나선 것이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독립문 평화의 집은 ‘희망 자동차’를 포함한 폐지수집 어르신 생활 지원 사업은 물론, 어르신과 함께하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과 법률·심리상담 등을 펼쳤다. 그리고 지난 2022년 10월 창립총회를 거쳐 사회적협동조합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의 문을 열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소속 사제를 포함한 사제단과 평신도는 물론 지역주민까지 조합원으로 함께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다. 창립에 함께한 사제단은 지금도 조합원으로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2022년에는 ‘달려가는 희망 자동차’를 포함한 지금까지의 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현대아산복지재단이 수여하는 아산상(사회복지실천상)을 받았다.

강 상임이사는 “단순한 지원 사업을 넘어 지역 노인들의 빈곤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고, 참여한 이들의 공동 이익을 도모하고자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며 “협동조합 활동의 첫 번째 목표로 어르신들이 수집해오는 폐자원의 단가 안정을 위해 조합이 자체적으로 재활용센터를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협동조합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 정기총회 모습.

사회적협동조합의 또 다른 목표는 ‘고독감’으로 고통받는 어르신에게 공동체의 온기를 느끼게 도와주는 것이다. 노인들이 사회의 품 안에서 생활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어르신들에게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다. 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 폐자원 수거 어르신과 함께하는 월례회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 상임이사는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하는 식사 자리 또는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교육·견학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함께 모이는 자리를 통해 ‘창조 질서를 지키는 활동가’라는 자부심을 심는 것은 물론 한 지역에 모여 사는 ‘한 식구’라는 인식을 심어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 덕에 무악동 거주 노인들에게도 일대 변화가 일고 있다. 강신효(마르코, 80) 할아버지는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일단 폐자원 상·하차를 도우려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라며 “예전과 같이 폐자원을 갖고 경쟁하는 분위기에선 이처럼 서로를 돕는 건 생각조차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복내(84) 할머니는 “전에는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폐지 줍는 일을 스스로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많았다"면서 "지금은 스스로 동네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문의 : 02-722-5805, 자원을 일구는 사람들 사회적협동조합.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4-03 오전 10:32:02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