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치유 받기 위해 예수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무리를 만들고 그 곳의 치유사로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나누도록 불림 받았음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배경과 종교, 서로 다른 학벌과 능력, 남자와 여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차별 없이 불러 모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소명에 동참하도록 초대하며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냈습니다.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루카 10,1)
예수는 원맨쇼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보다 앞서 나갈 72명을 선발했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예수의 소명은 매우 컸기에, 그는 그가 보낸 이들이 더 많은 협조자들을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공동체가 배타적이거나 고립적인 조직이 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8)
세례받은 후에 광야에서 내린 결정에 따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으로 나가길 원하셨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이전 경제적 지위와 무관하게 동등하게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루카 10,7)
처음에 저는 복음의 이 장면에서 예수가 한 집에(당시에는 마을에 호텔이나 펜션 같은 것들은 없었지요) 머물라고 한 권고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머물게 되는 그 집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니까요. 하지만 곧 저는 한국과 필리핀에서의 제 경험을 생각해냈습니다. 제가 제주에 처음 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저를 집에 초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갈 때마다 저는 정말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위해 제공한 음식들은 그들의 기준에서는 거의 잔치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저는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지만, 그들은 그럴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필리핀에서도 산간마을을 방문했을 때 저는 한 집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역시 다른 모든 집에 식사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초대는 멈추었고, 그 때에야 대부분의 경우에 이 곳 사람들이 얼마나 열악한 식사를 하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원한 것이 바로 이런 것 아니었을까요? 방문하게 될 사람들의 가난함을 제자들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 하셨구나 하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경험하길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루카 10,11-12) 예수는 제자들을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압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줍니다.
한 번은 기자가 마더 데레사에게 그녀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가난한 이들이 있기에 그들을 다 돌본다는 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지요. 이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목적은 내 목표를 성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충실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성공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의 소명에 충실하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렇게 제자들과 우리들을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부터 구해주십니다.
예수의 소명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의 소명은 단순히 추종자들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소명을 밝혔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글 _ 이어돈 신부 (Michael Riordan,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제주교구 금악본당 주임, 성 이시돌 피정의 집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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