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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참회와 속죄의 성당’건립 과정 소개 2013-06-20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시편 126, 5.)

신자들이 뿌린 통일 염원, 교회 안에서 열매 맺어

-천주교‘참회와 속죄의 성당’건립 과정 소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세워진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 정전 60주년인 오는 6월 25일(화) 봉헌된다. 이날 오후 2시에 진행되는 봉헌미사는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의정부교구장이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인 이기헌 주교,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 등이 공동 집전한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무엇보다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신자들의 기도와 참여로 마련되었다. 성전 건립을 위한 교회의 노력뿐만 아니라 건립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신자들의 정성이 이어지면서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의 건립 과정을 소개한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 건립연혁-

1996. 5.

천주교 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회장 봉두완, 지도신부 김병일 신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694번지 통일동산 내 종교부지 2,297평 매입

1997. 5.

천주교 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 매입부지 교구에 지정기탁

2003. 9.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발표(‘민족화해센터’ 건립 건의)

 2004. 11.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민족화해센터’ 재가,

‘민족화해센터’ 건립 추진위 구성

2006. 4.

경기 파주시 통일동산 내 부지에 ‘참회와 속죄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 착공미사 봉헌, ‘

참회와 속죄의 성당’ 착공식

 2006. 11.

‘참회와 속죄의 성당’ 상량식(김운회 주교 주례, 정진석 추기경 친필 상량판 축성)

2007. 3.

‘민족화해센터’ 착공식

2008. 8.

‘참회와 속죄의 성당’ 완공

2013. 1.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 합의에 따라 ‘참회와 속죄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 소유권 의정부교구로 이관


□ 신자들이 통일을 염원하며 뿌린 씨앗 - ‘참회와 속죄의 성당’ 부지마련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공간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당시 통일 기도운동을 펼치던 실향민을 비롯한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신자들의 모임인 천주교 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지도신부 서울대교구 김병일 신부 ․ 회장 봉두완)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기탁하여 통일을 위한 피정센터 설립에 쓰일 계획으로 1996년 5월, 통일동산의 종교부지(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694번지) 2,297평을 매입했다.

 

천주교 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는 계획대로 이듬해 해당 토지를 ‘남북한 통일을 위한 연구 및 교육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서울대교구에 지정 기탁했다. 토지 매입금은 천주교 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의 모금운동을 통해 마련됐다. 많은 이북출신 실향민과 기업들이 성금 모금에 동참했다.

 

당시 천주교 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 회장이자 황해도 수안 출신인 봉두완(현 사단법인 한미클럽 회장)씨는 “천 원 남짓한 쌈짓돈을 정성껏 헌금한 할머니부터 몇 억 가까운 금액을 선뜻 기부한 기업인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기관의 동참으로 14억 8000여만 원이 모였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황해도 출신으로서 지도신부를 맡았던 김병일 신부님의 열정에 힘입어 많은 신자들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아낌없이 드러내면서 성당 부지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이러한 신자들이 주춧돌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997년 6월 22일,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천주교 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가 주최한 북한동포걷기대회에서 성금을 기탁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이 단체의 고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국민회의 총재, 김 추기경 옆에서 박수치는 이)도 함께했다.

 

 

□ 통일 염원을 키워나간 교회 - ‘참회와 속죄의 성당’ 착공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은 교구 시노드(교구대의원회의, 2000~2003년 진행) 후속 교구장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를 통해 “교구가 민족화해운동과 인도적 차원의 물자지원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준비를 더욱 효율적이고 구체적으로 하도록 ‘민족화해센터’를 설립할 것”을 촉구했다.(사회복음화 제7부 민족화해 33항 참조)

 

이를 계기로 교구는 2004년 11월 ‘민족화해센터’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공사 준비에 들어갔다. 건립 추진위는 1차 ‘참회와 속죄의 성당’ 공사, 2차 ‘민족화해센터’ 공사로 나눠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2006년 4월 8일 ‘참회와 속죄의 성당’ 부지에서 정진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참회와 속죄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 착공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대교구는 2006년 4월 8일 ‘참회와 속죄의 성당’ 부지에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집전으로 ‘참회와 속죄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 착공미사를 봉헌하고, ‘참회와 속죄의 성당’ 기공식을 가졌다. 2006년 11월 27일에는 성당 상량식을 거행하고 정진석 추기경의 친필이 새겨진 상량 현판을 축성했다.

 

건물은 △‘참회와 속죄의 성당’, △‘민족화해센터’, △북녘 관련 자료와 평양․함흥교구와 덕원자치수도원구 등 옛 북녘 교회 모습을 보여줄 전시동 등 총 3개로 구성되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신의주 진사동 성당 외관과 덕원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대성당의 내부를 재현했으며, ‘민족화해센터’는 평양 외곽에 위치한 메리놀 본부 건물의 형태를 본떠 설계했다. 이는 북한 교회가 지하교회와 여전히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 2006년 11월 내외장 공사를 남겨둔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서울대교구 ․ 의정부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이 상량식을 가졌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1) 상량식이 열리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

(2) 상량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신자들,

(3) 김운회 (당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주교가 서울대교구 및 의정부교구 사제단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

(4) 정진석 추기경의 친필 상량판. 상량판에는 “눈물로 씨 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 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 126, 5-6.) 라는 시편 구절이 적혀있다.

 

   

남북 협력의 상징이 될 ‘참회와 속죄의 성당’

모자이크화․유리화․성상(聖像) 등 남북 화해를 상징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건립취지에 따라 모든 예술품은 북한과 남한의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성당 내외부 구성과 디자인 및 성당을 가득 꾸민 모자이크화는 서울대교구 장긍선 신부(이콘연구소장, 당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 겸 ‘민족화해센터’ 건립추진위원회 담당사제)가 설계했다. 그 중에서 성당 제대 위에 부착된 모자이크화 ‘왕이신 그리스도 및 남북 대표 성인 8위’와 성당 입구 정면 상단부에 부착된 모자이크화 ‘왕이신 그리스도’는 북녘의 만수대 창작사 벽화창작단 소속 공훈작가 1명과 소속 작가 6명에 의뢰하여 중국 현지에서 제작되었다.

 

이 중 모자이크화 ‘왕이신 그리스도 및 남북 대표 성인 8위’는 예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유정률 베드로, 정하상 바오로, 김대건 안드레아, 유대철 베드로 성인이 배치되었으며, 오른쪽에는 우세영 알렉시오, 고순이 바르바라, 김효임 골롬바와 김효주 아녜스 성인이 묘사되었다. 이중 유정률 베드로 성인 평양출신, 우세영 알렉시오와 고순이 바르바라는 황해도 출신의 대표적인 순교자들이다. 남북의 대표적 성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운데 모시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전구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또한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가 12사도상 및 십자가의 길 14처 등 교회미술품을 제작하였으며 최영심 작가가 유리화 작품을 제작해 설치했다.

 

설치된 성물 역시 민족 화해를 염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1870~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참회하는 뜻에서 지어진 파리 몽마르트 예수성심대성당의 정신을 잇기 위해 예수성심상이 배치되었다. 전쟁과 이념갈등, 분단으로 얼룩진 한반도의 일치를 기원하는 뜻에서 루르드 성모상도 설치되었다.

 

교회와 신자들의 정성으로 마련된

참회와 속죄의 성전

 

성당의 신축기금은 서울대교구 지원금과 기타 신자들의 봉헌금으로 충당하였다. 장긍선 신부는 “건립비용이 부족하여 공사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때 모금을 위해 서울은 물론 부산까지 찾아갔다. 그렇게 문을 두드리다보면 기적처럼 신자들의 관심과 정성이 이어졌다. 이북 출신의 실향민 할머니들께서 평생 아껴 모은 돈을 전해주셨는데, 무려 3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한 할머니는 폐휴지를 주워 생계를 잇고 계셨음에도 몇 달 분의 폐휴지 판매대금을 아낌없이 봉헌하셨다. 평양교구 사제단과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등 사제들과 수도회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기탁금뿐만 아니라 모두가 기도로 한마음이 되어주셔서 큰 힘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평양 관후리 출신 실향민 전재선(93, 서울대교구 방배동성당) 할머니가 2007년 평생 모은 재산 1억 원을 성당 건립을 위해 봉헌하는 등 겨레의 화해를 기원하는 이산가족과 신자들의 귀중한 지원이 이어졌다. 이렇게 전국에서 모인 성금 5억 원과 서울대교구 지원금 30억 원이 더해져 총 35억 원이 성당 건축비용으로 사용되었다. 교구는 이를 통해 2008년 ‘참회와 속죄의 성당’을 완공할 수 있었다.

 

한편, 성당이 착공된 지 1년만인 2007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최창화 몬시뇰 주례로 ‘민족화해센터’ 착공식을 거행했다. 서울대교구는 정부로부터 ‘민족화해센터’ 건립사업을 3년에 걸쳐 분할 지원받는 연속 사업으로 인정받아 2007년부터 35억을 지원받게 되었다. 이 지원금으로 2008년 7월까지 ‘민족화해센터’의 골조공사를 마쳤다. 하지만 ‘민족화해센터’는 2007년 12월, 2008년도 정부 예산 심의에서 관련 지원금이 삭감되면서 공사가 중단되는 등 난항을 겪었다. 이 센터는 차후 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 교구를 초월한 참회와 속죄의 기도 공간

 

2004년 ‘참회와 속죄의 성당’ 과 ‘민족화해센터’ 설립을 재가했던 정진석 추기경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예수성심대성당을 ‘참회와 속죄의 성당’의 모델로 삼았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인 죄를 회개하자는 뜻에서다. 몽마르트의 예수성심대성당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서로 많은 형제들을 죽인 죄를 참회하는 뜻에서 지어졌다.

 

이번 ‘참회와 속죄의 성당’봉헌식을 앞두고 정 추기경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한 곳인 ‘예수성심대성당’은 교구를 초월하여 프랑스 가톨릭교회 전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성당에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회를 위한 ‘성체 현시와 기도’가 거행되고 있다. 우리가 축성하게 되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도 파리 몽마르트의 예수 성심대성당과 같은 목적을 가진 성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 건립에 힘쓴 서울대교구는 2012년 12월, 성당 부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관할지역인 의정부 교구로 이관하는 것에 합의하였다. 이에 따라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2013년 1월부로 의정부교구에서 관리하게 되었으며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은형 신부가 담당사제로 임명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