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미술관] 루벤스 ‘삼손과 들릴라’ - 1609년경. 목판에 유채, 185x20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삼손은 구약성경 판관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이자 전설적 영웅으로,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에서 구원해 내리라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괴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결국 인간적 정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필리스티아의 앞잡이인 들릴라의 꾐에 빠진 나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이런 삼손의 일화는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여, 미술뿐 아니라 밀턴의 시극인 ‘투사 삼손’이 있고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들릴라’를 비롯해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잘 알려져 있다. 하느님의 축복으로 엄청난 힘을 가진 삼손, 그러나 경건한 생활이 의무인 나지르인의 자세를 저버리고 시체에 접근하였으며, 포도주를 마시고 창녀와 동침하는 등의 문란한 생활을 서슴지 않았다. 더욱이 필리스티아 여인과 결혼하고 그녀가 그를 떠나자 필리스티아인 1천 명을 죽이는 참혹한 행위를 일삼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 그 괴력의 근원을 알고자 한 필리스티아 제후들의 사주를 받은 들릴라의 계략에 빠져 긴 머리를 잘리고, 힘이 빠져 체포된 뒤 두 눈을 뽑히고는 감옥에서 연자매를 돌리는 치욕을 당하고 만다. 이런 수모의 순간 하느님께 참회의 기도를 올려, 그 은총으로 힘을 회복하고는 필리스티아의 성전 기둥을 뽑아 무너뜨리는 복수극과 함께 장렬한 전사를 한 인물이 삼손이다. 이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 하느님의 계율을 어기고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져서야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 인간적 사랑의 노예이자 하느님 사랑의 화신인 삼손을 주제로 한 많은 그림 가운데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년)가 그린 ‘삼손과 들릴라’이다. 루벤스는 17세기 유럽 바로크 회화의 거장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뛰어난 유머 감각 그리고 부드러운 성품과 원만한 사교능력을 지닌 화가였다. 이런 개인적 능력과 함께 6개 언어에 능통한 재능으로 각 나라의 왕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로마 교황 등의 성직자들을 비롯해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 등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이런 그의 인기와 재능은 그를 단지 화가가 아닌, 나라를 위한 외교관으로서 활동하게 하였다. 특히 그는 영국을 침공하려는 스페인을 설득하여, 1630년 양국이 평화협정을 맺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면서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영국의 찰스 1세한테는 기사 작위를,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는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명민한 화가로서 루벤스는 종교화나 초상화를 비롯해 신화를 주제로 한 세속화 등에 걸쳐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는데, 그의 그림은 밝고 화려한 색감을 중심으로 건강하고 풍만한 여체를 묘사하는 동시에 아주 극적이면서도 과장되고 에로틱한 효과의 바로크적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엄숙하고 진중한 이미지를 담아야 하는 공식 종교화에서조차 그는 화려한 색채와 관능적 분위기를 연출할 정도로 독특한 예술성을 보였던 것이다. 이런 그의 회화적 독창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종교화가 바로 그가 28세에 그린 ‘삼손과 들릴라’이며, 이 그림이 루벤스가 불후의 명성을 갖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그림은 루벤스풍의 밝음과 어둠의 대비가 뚜렷하여, 보는 이에게 그 드라마틱한 상황에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인간의 육체를 아름다운 색감으로 과장시켜 표현한 루벤스 특유의 바로크적 화필이 역력하게 나타나있다. 화려한 고급 창녀촌으로 설정된 그림의 상황은 괴력의 근원을 알고자 들릴라의 반복된 물음에 거짓 대답을 한 뒤, 결국 그 보챔을 이기지 못하고 진실을 알리고 만 나약한 삼손의 최후의 순간이다.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머리카락이 잘리는 순간, 하느님의 영이 임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는 순간 말이다. 특히 그림은 삼손이 불같은 정사 뒤에 사랑하는 여인의 배 위에 곤히 잠든 순간을 밝은 빛과 더불어 표현하고 있다. 배 위에 누워 잠든 삼손의 눈은 이미 총기를 잃어 사리분별을 할 수없는 허약한 인간의 것이며, 그 벌어진 입은 인간의 만끽한 욕정을 보이고 있다. 또한 그의 강하고 두꺼운 팔은 무기력하게 축 처져있으며, 강인하게 보이는 등은 들릴라의 도닥거리는 손에 깊이 잠들어 있다. 이 팔과 등의 근육과 힘은 하느님의 계율을 지키고자 부여한 것임에도, 인간의 욕정과 타락하고 추한 창부의 손에 무기력해진 것이다. 바로 하느님의 권능이 인간의 욕망에 가려진 죄의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스스로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알지 못하는 죄는 회개나 참회할 길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머리를 깎이면서 하느님한테 버림받는 삼손을 바라보는 들릴라의 무심한 눈길이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알지 못하기에, 아직도 정념의 순간 드러낸 젖가슴을 가릴 생각도 없고, 아무 부끄럼도 보이지 않는 사악함을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녀의 멋진 금발과 터질 것 같은 젖가슴, 매끈하게 빛나는 피부가 보이듯 물질적 허영과 육체적 욕정뿐이다. 이처럼 스스로 알지 못하는 죄, 단지 육욕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한 인간 때문에 벌어지게 될 처절한 피의 드라마가 그녀의 붉은색 치마에 서려있으며, 그 피의 운명이 삼손의 입술을 적시고 있다. 이처럼 하느님의 계율이 인간의 욕망으로 무참하게 짓밟히는 그 현장에 함께한 사람들을 보자. 아주 능란한 솜씨로 삼손의 머리를 가위질하는 이발사 역시 무심한 표정으로 죄의 직무에 충실하다. 그의 뒤로는 가늘게 흔들리는 죄의 촛불을 밝혀 작업을 돕는 늙은 노파가 이 극적 순간을 놓칠세라 주름진 눈을 드리우고 있다. 모두들 악의 화신들이며 사탄의 마수들이다. 이처럼 악은 고고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파리떼처럼 집단으로 추하게 성역을 잠식하는가 보다. 그림 상단의 벽감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와 그의 아들 큐피드상이 보인다. 비너스의 모습은 그림 속 들릴라의 모습을 닮은 것이 사랑의 운명을 암시하는 바, 그 표정이 비통한 것으로 보아 거짓 사랑의 비극적 종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입을 천으로 둘러막은 채 이 장면을 외면하려고 어미의 품에 안타깝게 매달리는 큐피드에게서도 그릇된 사랑이 초래할 운명을 예견할 수 있다. 그림의 오른편 문밖에는 한 무리의 병사가 있는데, 삼손의 머리를 다 깎으면 곧바로 달려들어 삼손의 눈을 후벼 파려고대기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악의 행각이 벌어지고 있는 이 현장에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몸을 문짝에 기댄 자가 보이고, 그 뒤로는 서로를 바라보며 스스로 행할 행위의 명분에 회의를 느끼는 자들도 있다. 아무 반성 없이 죄를 일삼은 전경의 사람들에 비해 이들이 보이는 일말의 죄의식은 아마도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죄의 행위에 대한 후회와 참회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 같다. 이처럼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는 많은 삼손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삼손의 나약한 인간적 심성을 자극하는 수많은 유혹거리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 말씀을 어기고 위반하는 행위를 순간마다 일삼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스스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이는 참회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악행인 것이다. 하느님께서 결국 삼손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마지막 힘을 주신 것처럼, 기다리고 인내하시는 하느님께 날마다 기도하고 죄의 용서를 청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도리임을 이 그림을 통해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림 속 천장에 매달린 커튼이 젖혀있어 이 부끄러운 현장을 무리 없이 보여주는데, 이는 아무리 큰 죄도 하느님 품에서는 미약한 것임을 적극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 권용준 안토니오 - 문학박사. 한국디지털대학교 교수. 미술비평가.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이 있다. [경향잡지, 2009년 2월호, 권용준 안토니오]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r/rubens/15biblic/02samson.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