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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 2010-03-02
[함께하는 미술 산책]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새해부터 ‘함께하는 미술 산책’을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교 미술사 속의 무궁무진한 보물들을 소개하는 이 난이 작품들의 미술사적 의미는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독자들을 깊은 감동과 깊은 묵상으로 인도하는 영혼의 오솔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남쪽으로 40여 분 내려가면 오늘날은 작은 시골 마을인 샤르트르에 바로 서양 중세 건축의 꽃,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de Notre Dame de Chartres)이 그 웅장함을 과시하며 우뚝 서있다. 

본래 1020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던 이 성당은 1194년 화재로 대부분이 훼손된 뒤, 농민과 영주들의 후원으로 불과 25년 만에 초기 고딕 양식으로 신축되었다. 이 성당은 그 내외부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조각들과 특히 내부의 환상적인 스테인드글라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돌로 된 성경’이라 불릴 정도로 구 · 신약의 주요 장면들을 정교한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로 풀어놓은 이 성당은 과연 이같이 아름다운 작품이 어떻게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미술사 속의 걸작이다. 

대략 6세기에서 12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는 단순하고 견고함이 특징인 로마네스크 양식이 발달하였고, 12세기 중반에서 15세기 말까지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고딕 양식이 꽃을 피웠다. 본래 ‘고딕’이란,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이 410년 로마를 약탈한 야만적인 게르만족인 비지고트(Visigoths)를 경멸조로 일컫는 데서 붙여진 이름인데, 실질적으로 고딕 양식은 투박하고 거친 것과는 거리가 먼 매우 화려하고 우아한 양식을 발달시켰고 여기서 살펴볼 샤르트르 대성당은 초기 고딕 양식의 대표작이다. 

수백 명의 작가, 장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만들어낸 이 웅장하고 놀라운 예술작품은 대부분 무명으로 남아있다. 이기주의와 작가 중심의 스타 의식이 팽배한 현대의 사고방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개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세기 중반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이고 그 이전 곧 중세의 작가들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다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참여한 하나의 도구로 여겼다. 

프랑스 중세 교회미술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한 생드니 수도원장 쉬제르(1081-1151년)가 “신의 전당은 아름다운 것을 진열해 놓은 장소여야 한다.”고 하였듯이, 중세 사람들은 하느님을 위해 만든 공간인 성당을 아름답게 장식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장식적인 기능과 함께, 다수가 문맹이었던 신자들에게 글이 아닌 이미지를 통해 성경의 내용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교육적 역할에 주력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의 사상가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에는 세계에 대해 빛과 낙관주의로 가득 찬 이미지를 갖고 있었으며 이 세상의 미가 이상적인 미의 영상이자 반영이라는 범미적 사고가 지배했다.”고 하였는데, 유독 ‘빛’의 표현에 민감했던 중세인들이 “고유의 광휘를 자아내는 색조의 조합”인 스테인드글라스에 매료되었던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1210년에서 1240년 사이에 제작된 샤르트르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왕실을 비롯하여 귀족, 성직자와 상인조합이 총동원하여 지원, 제작된 대대적인 합동작업의 결과물로, 그 내부는 장장 176개의 정교하고 화려함의 극치인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검은 색의 납선을 용접하여 이어 붙인 수많은 색유리 조각들의 조합은 각기 다양한 성경 내용을 전달해 주고 마치 천상의 빛이 성당 내부로 녹아드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함과 동시에 성당 안에 있는 신자들을 천상의 신비 가득한, 드높은 곳으로 인도한다. 

‘아름다운 성모 유리창’이라 불리는 창을 보면, 고딕 양식의 특징인 뾰족한 아치가 있고, 그 위쪽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그 아래에는 새하얀 비둘기 형상의 성령이 성모 위에 임한다. 중앙의 붉은 배경을 뒤로 하고 옥좌에 앉아있는 성모자를 중심으로 양편의 푸른 공간에는 손에 향로와 촛대를 든 천사들이 중앙의 성모자를 향해 무릎 꿇고 경배하고 있다. 

천상의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아있는 성모의 후광과 옷은 천상계와 성모의 순결을 상징하는 푸른 하늘빛으로 눈부시고, 그녀를 둘러싼 루비 빛의 후경은 푸른색과 대조되어 더욱 화려하게 빛난다. 정면을 응시하며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리아에게서는 교회의 어머니다운 자비로움과 기품이, 권위적인 자태와 확신에 찬 모습의 예수님은 왼손에는 성경을 펼치고, 오른손으로는 자신이 ‘이 세상의 빛’임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작품,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에서는 역시 천상의 푸른 공간을 배경으로 둥근 테두리가 있고 그 안에는 마리아가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반가이 재회하는 장면이 있다. 붉고 푸른 옷을 입은 엘리사벳은 환영의 자세로 두 손을 활짝 펴고, 연한 베이지 색조 복장을 한 마리아는 오른손은 가슴에 다소곳이 얹고 왼손은 들어 겸손한 자세로 인사하고 있다. 영원의 푸른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감동적인 장면은 그 형태와 구성이 단순하여 이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감정표현이 배제된 듯한 이들의 표정은 더욱 깊은 묵상으로 이끌어준다. 

다음은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천상의 푸른 공간의 맨 중앙에는 붉은 후광에 감싸인 예수님이 왼손에는 포도주가 담긴 성배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릴 계약의 피”임을 설명하고 있다. 

수평으로 놓인 탁자를 중심으로 중앙에는 예수님이 그리고 양 옆에는 제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양편으로 배치됨으로써 중앙의 예수님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의 무릎에는 팔을 괴고 눈을 감은 채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품에 안긴 듯 보이는 제자가 있는데, 그는 바로 예수께서 유독 사랑하신 제자 요한이다. 

식탁 둘레에 있는 제자들은 모두 예수께 향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 식탁 너머에 서있다. 이는 뒤에 예수님을 로마 군인에게 팔아넘길 유다이다. 색유리를 제작한 무명의 작가는 오직 유다의 머리에만 후광을 넣지 않고 크기도 작게 표현함으로써 그의 정체를 암시해 주고 있다. 천상의 깊고 푸른 공간을 배경으로 단순 명료하게 표현된 예수님의 얼굴에서는 불필요한 선이 배제되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함으로써 사뭇 경직될 뻔했던 표현을 완화시키고 있다. 

온갖 화려한 기교가 난무하는 오늘날, 그 표현이 단순하면서도 진실되며 정신적으로 응축된 종교적 감정을 담아낸 스테인드글라스의 노동은 깊은 반성과 감동을 준다. ‘하느님을 위해서’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리는 중세인들의 소박하고 겸손한 장인정신이 더욱 고귀하게 느껴진다.

* 박혜원 소피아 - 판화가. 벨기에 브뤼셀 리브르 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와 고고학,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 판화과를 수석 졸업했다. 인천 가톨릭 대학교, 한양여대, 상명대학교 등에 출강하였고, 2003년 평화방송 ‘함께 보는 교회미술’을 진행했다.

[경향잡지, 2010년 1월호, 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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