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갤러리

전체메뉴
  • 검색

가톨릭성미술

back

sub_menu

  • 가톨릭성미술 > 성화/이콘 해설

  • 안-루이 지로데-트리오종의 아탈라의 매장
  • 2026-04-07
[성화 속 성경 이야기] 아탈라, 십자가의 구원

- ‘아탈라의 매장’, 1807~1808년, 안-루이 지로데-트리오종(Anne-Louis Girodet-Trioson, 1767-1824), 캔버스에 유채, 루브르 박물관

캄캄한 동굴 입구, 평온한 미소를 짓고 가지런히 두 손을 모은 아름다운 소녀가 있습니다. 오른편, 갈색 수사복을 입은 수도자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부축하고, 왼편에는 소녀의 양 다리를 힘껏 껴안고 흐느끼는 흑갈색 머리에 짙은 피부를 한 청년이 있습니다.

대체 무슨 사연을 담은 장면일까요? 안타깝게도 행복한 꿈을 꾸는 듯 눈을 감고 있는 이 소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이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샤토브리앙(Francois-Rene de Chateaubriand, 1768-1848)의 기독교적인 감수성이 담긴 소설, ‘아탈라’(Atala, 1801년)를 소재로 그려졌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초 북아메리카,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루이지애나입니다. 스페인-인디언계 혼혈인 아탈라는 굳은 신심의 소유자로 평생 순결을 서약한 상태였지만, 그만 인디언 청년 차크타(Chactas)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슴을 찢는 선택의 벼랑 끝에 선 아탈라는 결국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내어드리는 길을 택합니다. 소녀는 독을 마시고 영원히 하느님 품에 안기는 선택을 합니다.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와 출중한 외모를 지닌 청년은 죽은 연인을 안고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회색빛 턱수염에 나이 지긋한 이는 오브리(Aubry) 신부입니다. 마치 웨딩드레스처럼 보이는 순백의 드레스는 소녀의 수의이기도 합니다. 생전 아탈라의 유언대로 그녀를 매장하는 두 남성, 대자연인 하느님 품에 누이기 위해 판 구덩이 앞에는 삽이 놓여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동굴 입구 우측 상단에는 구약의 욥기에서 욥을 찾아온 나아마 사람 초파르의 발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이란 여인에게서 난 몸, 수명은 짧고 혼란만 가득합니다. 꽃처럼 솟아났다 시들고 그림자처럼 사라져 오래가지 못합니다.”(욥 14,1-2)

샤토브리앙은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며, 세상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기보다 더 고결한 가치를 추구하라는 숭고한 메시지를 조용히 전해줍니다. 19세기 초 프랑스 작가 안-루이 지로데-트리오종이 그린 ‘아탈라의 매장’은 엄격하고 이성적인 신고전주의에서 보다 감상적인 표현의 낭만주의로 흘러가는 과도기 작품입니다. 신고전주의의 거장 자크-루이 다비드(J.L.David)의 제자인 지로데-트리오종은 부드럽고 신비로운 빛을 통해 보다 감성적이고 영적인 숭고함이 느껴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결코 죽음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 좌측 뒤로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 아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대한 십자가가 마치 소녀를 안아주는 듯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서 있습니다. “꽃처럼 솟아났다 시드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향기를 발산하는 꽃’이 된 아탈라.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그리고 조선에서 가혹한 박해를 겪던 시절, 하느님과의 서약으로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수많은 순교자들의 숭고하고 고결한 영혼과 희생의 무게를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1세기, 더 이상 박해의 위험은 존재하지 않지만 싸워내야 하는 악은 여전히 많습니다. 욕심, 욕망, 교만, 안일함, 시기 질투와 증오심, 세상과의 정의롭지 않은 타협 등 모두 나열하기 어려울 지경이지요. 그래서 이 작품은 고결한 뜻을 위해 나 자신을 내어놓는 용기,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 뜻에 부합한 것인지에 대한 엄숙하고 진지한 성찰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 박혜원 소피아 : 저서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2020) 「혹시 나의 새를 보았나요」(2023), 현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2026년 4월 5일(가해) 주님 부활 대축일 의정부주보 4면, 박혜원 소피아]
  • 156
  • 1

tag

주호식(jpatrick)gallery

facebook twitter pinterest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