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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미술 > 성화/이콘 해설

2024-07-10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성화 속 성경 이야기]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 안토넬로 다 메시나,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 1476-1478년경, 목판에 유채, 29.8cmX21cm, 루브르 박물관(프랑스 파리)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깊이 눌러쓰고, 목에는 밧줄이 걸려 있습니다. 보이진 않지만 아마 뒤에 있는 기둥에 묶여 있을 겁니다. 날카로운 가시관에 찔려 흐르는 피는 작은 방울로 응고되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작은 핏방울로 절제한 표현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고 투명하고 작은 눈물 몇 방울… 깊은 고통과 고독 속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절절하게 호소하는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조롱과 매질로 상처 입은 그리스도의 절망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요? 복음사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지키던 사람들은 그분을 매질하며 조롱하였다”(루카 22,63)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마태 27,26).

이 그림은 마치 그리스도의 얼굴만 클로즈업한 듯하지만, 사실 조금도 잘리지 않은 작품 전체입니다. 현대적이고 과감한 화면 구도가 획기적인데,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인 1476~1478년경 그려졌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만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 외에도 뛰어난 거장들이 많습니다. 이 작품은 과학적 사고와 휴머니즘이 꽃핀 르네상스 시대의 숨은 거장,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 c.1425-1479)의 말년작입니다. 안토넬로는 관객의 시선이 오로지 예수님의 얼굴에만 집중되도록 하여, 그분의 깊은 고뇌와 슬픔을 극대화하였습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북동부 항구도시 메시나(Messina) 태생인 안토넬로는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동양과 서양, 남유럽과 북유럽 간 활발한 경제 및 문화교류의 장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북유럽의 플랑드르 미술을 접하게 됩니다. 플랑드르는 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인데, 플랑드르 미술은 깊은 정신성이 응축된 극사실적이고 절제된 감정 표현이 특징이지요. 햇살이 풍부한 이탈리아와 달리 어둡고 흐린 날이 많은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자연스럽게 더 사색적인 성향을 띠게 됩니다. 안토넬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에 플랑드르의 섬세한 사실적 묘사를 수용하여 자신만의 개성 넘치고 감동적인 화풍을 탄생시켰습니다.

인성과 신성을 모두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어리석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내놓으셨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안토넬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고, 깊은 고독과 두려움 그리고 희노애락을 느끼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고 말입니다. 때로 우리는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셨기에 수난의 고통을 덜 느끼셨을 거라 짐작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 속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고통을 견디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안토넬로가 그려낸 ‘인간 예수’가 더욱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입니다. 그 십자가가 더욱 빛나는 이유입니다.

* 박혜원 소피아 : 저서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2020) 「혹시 나의 새를 보았나요」(2023), 현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2024년 7월 7일(나해) 연중 제14주일 의정부주보 4면, 박혜원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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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jpat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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