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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미술 > 성화/이콘 해설

2024-05-07

그라스의 성모

[성화 속 성경 이야기] ‘어여쁜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그라스의 성모>, 15세기 중후반, 석회석에 채색, 툴루즈 오귀스탱 미술관(프랑스)

유럽 중세시대는 성당과 수도원 건설 및 미술품 제작 등 그리스도교 문화가 절정인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과 백년전쟁 같은 캄캄하고 긴 고난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암흑의 터널을 지나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프랑스는 평화를 되찾게 됩니다.

세상의 고통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성모님께 위안을 받고픈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15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그라스의 성모>는 너무나 어여쁘고 상냥한 모습입니다. 조각 하단에 ‘그라스의 성모’(Notre Dame de Grasse)라 새겨졌는데, 이는 프랑스 남동부 ‘향수의 도시 그라스’(Grasse)가 아니라, ‘은총의 성모’(Notre Dame de Grace)가 잘못 새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꽃향기가 나는 듯한 모습이어서 향수의 도시 그라스가 어울리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현재 이 걸작은 프랑스 남서부의 대도시 툴루즈(Toulouse)에 있는, 옛날엔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이던 ‘오귀스탱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천상모후의 관을 쓴 어여쁜 성모님은 푸른색, 노란색, 베이지색 등 부드러운 파스텔 색상의 드레스와 모피로 된 두꺼운 망토를 두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본래의 채색이 꽤 잘 남아있지요. 성모님은 오른팔로 바닥에 떨어질 듯한 미사 책을 잡고, 양손으로는 반대 방향으로 뛰쳐나가려는 아기 예수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또한 성모님은 우수에 젖은 표정으로 우측을 바라보는데, 예수님은 좌측으로 몸을 돌리고 있습니다. 과연 조각가는 무슨 이유로 성모자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예수님이 나중에 겪게 될 고통을 감지하신 성모님이 아들에게 주어질 가혹한 운명에서 보호해주고픈 애절한 모성애를 표현한 건 아닐까요?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겸허히 하느님의 뜻에 순종한 마리아. 절대적 순종과 버거운 운명을 받아들인 용기는 그녀를 ‘예수의 어머니’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기쁨과 영광 그리고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성숙해갔습니다. 천상모후의 관을 쓰는 영광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자신의 운명과 엄마의 근심을 전혀 모르는 듯 그저 천진난만하기만 합니다. 아니,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자의 어머니라는 역할을 받아들인 충실함과 아들을 보호하고픈 인간적 모성애가 미세하게 충돌하고 있어 더욱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 걸작은 프랑스 중부 부르고뉴 지방에 퍼져있던, 사실적이고 이상적인 표현의 영향을 받은 어느 무명 작가의 작품입니다. ‘부르고뉴 조각’의 사실주의에 프랑스 남서부 랑그도크 지방 특유의 서정적이고 우울한 감성과 절제된 우아함이 더해져서 짙은 애절함을 느끼게 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어여쁜 마리아님! 지치고 어리석은 제 영혼은 당신의 겸손과 용기, 끝없는 사랑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습니다.’

* 박혜원 소피아 : 저서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2020) 「혹시 나의 새를 보았나요」(2023), 현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2024년 5월 5일(나해)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의정부주보 4면, 박혜원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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