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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미술 > 성화/이콘 해설

2025-08-06

외젠 들라크루아의 성모의 교육

[성화 속 성경 이야기] 성모의 교육

- 외젠 들라크루아 (Eugene Delacroix, 1798~1863), <성모의 교육>, 1842년, 캔버스에 유채, 95.4cm×124cm, 파리 들라크루아 미술관

녹음이 우거진 전원을 배경으로 어여쁜 소녀와 함께 책을 읽는 여인이 있습니다. 차분한 갈색 톤이 주를 이루는 이 평화로운 그림은 놀랍게도 프랑스 대혁명 하면 떠오르는 대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그린 작가의 작품입니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지요. 여기서 낭만주의는 낭만적이라는 의미와 함께 격정적인 감정의 표현을 일컫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자유, 평등, 박애의 깃발을 들고 힘차게 전진하는 모습과 달리, 소탈하고 정적이며 진실한 종교적 신심의 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노모는 성모님의 모친 안나이고, 소녀는 어린 마리아입니다. 「황금전설」에는 늙어서까지 아이를 갖지 못하던 마리아의 부모, 안나와 요아킴이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다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이를 갖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들은 가장 귀하게 쓰이기 위해 수난을 미리 받은 것입니다. 이 작품이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건 인위적으로 연출된 성스러움이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친근함 때문입니다. 다정한 모녀는 작가의 동시대인 19세기 프랑스 평민의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나와 마리아는 과거에 존재했던 이들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이웃입니다.

얼핏 보면, 뒤로 숲이 끝없이 펼쳐진 듯하지만, 중경에는 사랑과 열정 그리고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겪게 될 고통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 덤불이 나지막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측에는 백장미도 보이는데, 바로 성모님의 순결을 의미합니다. 중세 이후, 울타리 또는 벽이 있는 장미 덤불 정원은 성모님의 무염시태(無染始胎)에 관한 은유로 ‘닫힌 정원’이라 불렸습니다. 인간 지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염시태의 신비를 아름다운 은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옛 그림들에서는 장미 덤불이 화려하게 표현되곤 했으나, 들라크루아가 그린 장미는 자연스럽고 은은해 고요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세상을 품을 듯 넉넉하고 인자한 안나가 앉아 있습니다. 훗날 천상모후의 관을 쓰게 될 마리아, 하지만 그에 앞서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끔찍한 고통을 겪을 딸의 앞날을 알기라도 하듯, 안나는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든든한 기둥 같습니다. 그녀의 넓은 무릎에는 성경이 펼쳐져 있고, 겸손하게 무릎 꿇은 앳된 마리아는 성경의 한 글귀를 가리키며 그 의미를 마음 깊이 새깁니다. 사랑하는 딸의 어깨 위로 다정하게 올린 손에서는 어머니 안나의 깊은 사랑과 온기가 전해집니다. 고전적 기품이 배어있는 대자연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넓은 품입니다. 안나와 마리아, 여기 겸손하고 소박한 두 여인은 하느님의 축복인 푸르른 자연에 묻혀, 그 일부가 되어 천상의 신비에 조용히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 박혜원 소피아 : 저서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2020) 「혹시 나의 새를 보았나요」(2023), 현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2025년 8월 3일(다해) 연중 제18주일 의정부주보 4면, 박혜원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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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jpatr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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