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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13) 정대식 작가 2024-04-19


고집 센 가난한 화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도 좋아했지만 그때는 음악을 더 좋아했어요. 당시 중고등학교에는 학교마다 밴드부가 있었는데, 밴드부에서 북 치는 것을 좋아해서 드럼을 쳤어요. 작은 북을 ‘사이드드럼’이라고 하는데, 그걸 했죠. 밴드부에서도 북은 별로 인기가 없었어요. 화려한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북의 매력에 빠져 대학 1학년 때까지 북을 쳤어요.


하지만 그림에 더 매력을 느꼈어요. 정해진 대로 연주해야 하는 음악 보다는 제 마음대로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 더 좋았죠. 그림은 물감이라는 도구로 그림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제가 욕구하는 걸 토해낼 수 있잖아요.


그렇게 홍익대 미술대학에 들어가 화가의 길에 들어섰어요. 저는 주로 산과 바다 등 자연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제가 좀 유별나서 좀 남과 다르게 그렸어요. 투박하고 화려한 원색을 고집했죠. 처음엔 사실화적 접근도 시도했지만 마음에 맞지 않았어요. 그러니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았죠. 집사람 고생도 많이 시키고요.



신앙 입문과 다양한 봉사활동


명동성당에서 지금의 아내와 함께 세례를 받았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굉장히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그 친구를 따라서 성당에 다니게 됐어요. 그리고 1966년 혼배성사를 받았고요. 세례를 받으면서 하느님께 약속을 하나 했어요. ‘재정적으로는 교회에 큰 도움이 못 돼도, 제가 가진 재주를 가지고 교회에 도움이 되는 신자가 되겠다’라고요. 그래서 교회가 부르면 ‘예’하고 달려가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성당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성당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그림도 그려 봉헌하고요. 1972년에는 명동대성당 성모동산에 야외 십자가이길 14처를 봉헌했어요. 거의 한 달 동안 성당 마당에서 산소용접기로 직접 철조각을 만들었어요. 당시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 감사장도 주셨고, 선물로 좋은 카메라도 하나 받았어요. 그 카메라는 딸아이가 아직도 쓰고 있어요.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는 제가 여의도 103위 순교성인 시성미사 제대 제작 총책임도 맡았어요. 그때는 여의도에서 살다시피 했죠. 1989년 두 번째 방한하셨을 때도 절두산 순교성지 시설 담당을 했지요. 세례 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제 능력이 필요하다면 어디든 갔어요.


미술심리연구가로 이름 알려


대학 4학년 때부터 서울 청량리에서 화실을 운영했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미술학원인거죠. 화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을 그렸죠. 주변의 은인들이 도와주는 셈 치고 그림을 사주셔서 근근이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은사님께서 화실에 찾아오셨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본에서는 화가들이 그림을 보고 심리분석을 하는 미술심리연구가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화가들이 하는 미술 심리분석이 심리학자들보다 더 정확하다면서요. 그래서 관심을 두고 혼자 배우다시피 연구했어요. 이 분야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초창기였어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미술 심리분석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 있던 대학 동창이 소개해 줬어요.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공개수업도 하고요. 그렇게 미술 심리분석 강의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저도 덩달아 명성을 얻게 됐어요. 이 분야로 수입도 많이 생겼고요. 일주일에 14~15시간씩 강의를 나갔으니까요. 관련해 책도 많이 냈고요. 덕분에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었어요.



그림 그리며 항암 투병


2012년에 서울역 인근 에이즈 환자 쉼터에서 심리치료 강의를 하던 때였어요. 어느 날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신장암 판단을 받았어요. 속으로 덜컥했죠. 좋은 마음으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데, 하느님께서 왜 제게 병을 주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쪽 신장을 떼어내고 항암치료를 하는데, 이게 방광으로 전이가 됐어요. 그리고 간까지. 지금도 계속 항암치료 중이고요. 겉으로는 굉장히 건강해 보여요. 하느님의 은총으로 잘 먹고 잘 자고요. 3개월마다 병원에 가요. CT와 MRI를 찍고 항암 주사를 맞고 있어요. 그리고 일주일 뒤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면 ‘사형 선고’를 받으러 가는 느낌이에요.


항암 주사를 맞고 나면 그 통증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런데 붓을 들고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그 고통을 잊게 돼요. 아프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더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주제도 종교적인 게 많아요. 기도하는 마음으로요. 내년 주님 부활 대축일쯤 예전에 그린 작품과 요새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열 계획이에요. 죽기 전에 마지막 전시회가 될 거예요.



◆ 정대식(마티아) 작가는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3년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2회의 개인전를 비롯해 수많은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화려한 원색을 이용해 산과 바다 등 자연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고, 미술심리연구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아동의 미술심리연구」와 「크레파스로 말해요」 등을 저술했으며, 2021년 제24회 가톨릭미술상 특별상을 받았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4-19 오후 3:07:5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