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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26)모자람의 영성 (상) 2020-05-26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 요한이 부모와 함께 상담실을 찾게 되었다. 사실 요한은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강압으로 상담실에 끌려 온 경우였다. 요한은 하는 수 없이 신부 앞에 와서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해결책을 얻어가야 할 판이었다. 아버지는 있는 대로 신부님께 다 말씀드리라면서 채근하기 시작했다. 요한은 마지못해 자신의 문제를 입 밖에 내기 시작했다. “신부님,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 빨리 졸업해서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어요.”

아들이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갑자기 큰 소리로 끼어들기 시작하였다. 아들에게 딴말하지 말고 자신의 문제를 사실대로 말하라는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아들이 입을 굳게 다물자 이윽고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는 아이의 문제를 하나하나 직접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아들이 게임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게다가 매사에 게으르고, 부모와의 약속이나 가정의 규칙을 안 지키며, 성당에 나가지 않는 등 아버지 눈에는 하나도 예뻐 보이는 구석이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이러다 사회의 낙오자라도 될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러다 너 뭐가 될래?”라는 말을 종종 내뱉곤 하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한은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될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성격적으로 중대한 결함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아버지의 관점에서 공부하면 잘할 수 있는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아 성적이 중하위권으로 밀려난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았다. 이러다 보니 아들의 모든 면에서 불만족스러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요한은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하며 의기소침한 상태였지만 확실히 우울증은 아니었다. 임상적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무기력 증상과는 달리 그 안에는 아버지를 향한 강한 분노의 에너지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우울한 감정과 무기력한 행동을 통해 아버지에게 항의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를 수동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요한이 아버지에게 가지는 불만, 아니 아버지로부터 얻게 된 고통은 아버지가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것이었다. 사실 자기를 위한 훈육임을 잘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아버지의 잔소리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를 받는 느낌을 주었다. 심지어 자신의 행동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아버지의 의도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이러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체험한 요한은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하느니 차라리 버림을 받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는 자식을 쏘아 올리는 활’이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시위를 힘차게 당기는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더 멀리 그리고 더 높이 날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어떤 부모에게는 자식이라는 활을 통해 자신이 쏘아 올려지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 욕망은 무의식에 교묘히 숨어 있어서 인식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이 자식을 위한 잔소리라고 말하지만 사실 자신을 위한 잔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한다. 분명 잔소리와 훈육은 구별해야 한다.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나무를 한꺼번에 넣지 않고 검불이나 잔가지처럼 불쏘시개를 먼저 이용한다. 나무를 한 번에 다 넣으면 오히려 산소가 부족해 불이 꺼진다. 아무리 좋은 소리도 정도에 넘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직도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자람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감 때문일까? 아니면 차고 넘치는 것에 대한 강박적 열망 때문일까?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가톨릭평화신문 2020-05-26 오후 5:42:04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