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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65. 기름 부음 2020-04-07


한 기계체조 유망주가 고난도 기술을 연습하다 턱이 바닥에 떨어져 척추 신경조직이 손상되었습니다. 여덟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와서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잊기 위해 열한 살 때부터 배운 기계체조였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바라볼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였으나, 그 사고로 9개월 동안 병원에서 겨우 손가락 구부리는 훈련만 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삶의 의미와 인생의 꿈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선교사로부터 “하느님은 각자의 사람에게 각자에게 맞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시련도 그 계획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겨낼 수 없는 시련은 주시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선교사의 말을 믿게 되었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피나는 재활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몇 개만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으로 다트머스 의대에 입학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공부해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하버드 의대 인턴과정도 수석으로 마치고, 미국 최고의 존스홉킨스대 병원 재활의학과 수석 전문의가 됩니다. 당시 미국의 두 명밖에 없었던 하반신 마비 장애인 의사 이승복씨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믿음으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나는 과정은 그야말로 처절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아기가 태어났다고 바로 인간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인간임을 알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부모처럼 두 발로 걷고 말도 하고 사회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그때까지 믿어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가르쳐야 합니다.


새로 태어남이 세례라고 한다면 이렇게 성장하는 과정이 견진입니다. 하느님께서 세례 때는 성령을 ‘물’과 결합하여 주신다고 하면, 견진 때는 ‘기름’과 결합하여 내려주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견진은 세례보다 매우 지속적인 은총을 받는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이 견진의 은총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더 닮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세례의 ‘새로 태어남’이 견진을 통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 태어남은 가짜입니다. 의사가 되었는데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사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면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물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는 것이 세례의 역할이라 한다면, 그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재촉하는 것이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는 견진의 역할입니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이들’이 있었는데 ‘왕과 사제와 예언자’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은 그리스도의 이 삼중직무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우리도 “하느님 아들의 인성과 결합하여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에페 4,13)”(695)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의 기름 부음’과 그 기름 부음을 주시는 분에게서 받는 ‘사명’을 동일시하시며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3,18-19)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들은 삼중직무를 통한 복음선포의 사명도 함께 받습니다. 이는 성령의 기름 부음이 하느님 것으로 인정되는 ‘인호’(印號)를 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698 참조)

물론 성령의 기름 부음 안에는 직무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직무를 수행할 힘도 들어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사도 10,38)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파견하실 때 그 소명과 함께 지팡이를 통한 능력도 함께 주셨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기름 부음은 물을 통한 세례의 탄생 이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심”(2코린 1,20)이요,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하여 결국엔 “온전한 그리스도”(695)가 되게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는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의 직무와 결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도록 세례받은 모든 이들의 등을 떠밉니다.




전삼용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수원가톨릭대 교수)

[가톨릭신문 2020-04-0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