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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막달레나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생애와 부활 2020-04-08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가운데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중요하고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지켜보았으며, 빈 무덤의 목격자이자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 열두 제자들에게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이런 이유로 ‘사도들을 위한 사도’, ‘열세 번째 사도’라는 칭호로 불리기도 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칭송 받는다. 하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생애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함께하며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그릇된 오해와 편견에 시달려 왔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마리아 막달레나는 누구인지, 또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으로 바라본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알아본다.


■ 마리아 막달레나는 누구인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름은 성모 마리아와 같은 ‘마리아’다.

신약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이 여러 명 등장한다. 성모님 외에도 라자로와 마르타의 동생으로 비싼 순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던 베타니아의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마르코 복음서에는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라고 나와 있다) 마리아가 대표적이다.

이름 뒤에 붙은 ‘막달레나’는 지명이다.

라틴어로는 ‘막달레나’(Magdalena), 그리스어로는 막달라, 히브리어로는 미그달로 불린다.

이스라엘 북부 티베리아스 부근 갈릴래아 호수 서쪽에 있는 마을로 지금도 ‘막달라’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마리아 막달레나는 ‘막달레나 출신 마리아’라는 뜻이다.

성경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로만 보자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이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으며(요한 19,25), 저녁 때가 돼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요셉이란 이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실 때도 그 맞은쪽에 있었고(마태 27,6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몇몇 여인과 함께 무덤으로 달려가 그리스도의 시신이 없음을 발견했으며(루카 24,3), 무덤 밖 동산에서 슬피 울고 있을 때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는 부활하신 스승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고 제자들에게 가서 그 소식을 전한(요한 20,11-18) 예수님의 제자다.

그런데 문제는 루카복음서에 성녀의 이름이 나오기 바로 전 내용이 시몬의 집에서 그리스도의 발에 향유를 부은 죄 많은 여인이다 보니, ‘죄 많은 여인=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잘못된 통념이 오래도록 지속됐다. 여기에 비뚤어진 상상력까지 가미돼 ‘마리아 막달레나는 창녀였다’, ‘간통을 저지른 부유한 유부녀다’라는 근거 없는 추측까지 난무했다. 또한 마르타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가 마리아 막달레나와 동일인이라는 오해도 있었다.

다행히도 교황청에서는 1969년 죄 많은 여인에 대한 것이었던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7월 22일)의 독서 내용을 바꾸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련된 오해들을 바로잡았다.


■ 마귀를 쫓아내시다

사실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을 통틀어 열두 번밖에 안 나온다.

그렇지만 성녀의 이름이 나오는 장면은 모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순간들이다.

루카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라고 직접적으로 서술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들린 일곱 마귀를 어떻게 쫓으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으로 미뤄 보건대 예루살렘에서 120㎞ 떨어진 고을에 살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여자의 몸으로 고향을 떠나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깊은 믿음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신이 직접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을 체험했기에, 또 예수님으로 인해 일곱 마귀에 들린 큰 고통에서 벗어났기에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먼발치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봤다.

또한 마르코복음에는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는 장례의 과정을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지켜본 것으로 나와 있다.

열두 제자들이 모두 흩어진 상황에서 끝까지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는 데에는 대단한 의지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용감함이 있었기에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 부활하시다

안식일 다음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는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사 무덤으로 갔다.

이미 예수님의 죽음으로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하기 힘든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끝까지 예수님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덤은 비어 있었고, 흰 옷을 입은 젊은이가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은 요한복음 20장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요한 20,15-16)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져 울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큰 슬픔에 빠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리아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그제야 알아 듣고 돌아서며 “라뿌니!”라고 응답했다. 이 세상의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이보다 더 아름답고 극적일 수 있을까. 가장 큰 기쁨이 있는 최고의 반전이었다.

이어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으로 바라본 예수님의 생애는 절망과 희망, 고통과 기쁨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러나 마지막은 부활에 대한 기쁨과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2016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는 교령을 발표하면서 “이 결정은 여성의 존엄성과 새로운 복음화,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라고 밝혔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우리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본받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과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할 것이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
[가톨릭신문 2020-04-08 오후 12:00:1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