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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라자로는 저와 당신의 이름입니다 2020-03-25

온갖 만물이 생명의 힘으로 약동하는 봄, 교회는 죽음을 선포합니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며 새 생명을 향한 희망의 관문임을 선포합니다. 오늘도 살아있다고 하나 사실은 죽어있는 세상을 살리려는 주님의 외침입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세상의 강한 사슬을 풀어주려는 구세주 예수님의 외침입니다.

그날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난 라자로를 살리신 주님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진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고 싶으신 하느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외침으로 온 세상을 적셨던 그날처럼 주님께서는 오늘,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나서 냄새가 나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바로 나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려 목청을 다해 외치고 계십니다.

죄 때문에 죽어가는 우리 모두가 라자로입니다. 생명이 아닌 것으로 치장하느라 지친 내 이름이 바로 라자로입니다. 이제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입시다. 그분의 음성에 응답해 드립시다. 서둘러 그분의 음성을 쫓아 당신의 말씀대로 행동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분노하고 질투하고 의심하며 미워하는 얼굴의 수건을 벗기시고 진리와 생명의 눈을 뜨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두려움과 자책과 열등감과 무기력의 천을 말끔히 치워주실 것입니다.

삶이 죄 때문에 썩어 문드러졌다 해도 괜찮습니다. 삶에 갖은 악취가 진동을 한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악에게 손발이 묶여 꼼짝할 수 없는 처지여도 무관합니다. 그분의 음성에 깨어나면 그만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만 해드리면 ‘얘기 끝’입니다. 그분의 치유를 믿고 ‘이 모습 이대로 나아가는 결단’만 있으면 됩니다.


세상에서 죽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죽기 위해서 오신 유일한 인간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작정하고 세상에 왔던 유일한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배신하고 외면한 것들에 마음 쓰지 않으십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이사 43,18)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튼튼한 주님 사랑을 믿고 투신할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 안에서 인간의 악랄한 본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일일 것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지울 수 없는 인간의 허물일 터입니다. 그런데 그 극심한 악이 저질러진 배경을 살피면 어이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죄 없는 예수님을 성난 군중에게 내어주었던 그 무섭고 끔찍한 인간의 책략에 할 말을 잃게 되는 겁니다. 달랑 손 한번 씻으며 책임을 벗으려던 빌라도의 가벼움에 분노가 솟구치고 예수님의 고통에서 볼거리를 원했던 헤로데의 음흉함에 소름이 돋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모욕했던 병사들의 무지도, 골고타로 향하는 주님께 가혹한 채찍을 휘둘렀던 군인들의 잔인함도, 덩달아 고함을 질러대며 합류했던 군중이 모두, 그날 그 순간에 예수님의 고통을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아, 스승님의 고통을 외면한 채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제자들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일 테지요. 그런데 솔직히 따져보면 이런 일들은 지금 우리에게도 흔한 일입니다. 고작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홀로 정의를 살아내는 양 이웃을 판단하는 모양새도 너무 익숙한 우리의 일상이니까요. 세상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다는 것에 안위하며 힘없는 이웃을 외면한 채 몸을 사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까요.


이리도 모자라고 덜 된 우리이기에 사순의 은혜가 절실합니다. 이 허다한 죄는 오직 값없이 주시는 십자가의 피로만 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라 믿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방법이 너무 쉽고 간단해서 의아해하고 의심합니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통 큰 하느님 사랑을 선뜻 받아들여 믿지 않는 것이 곧 ‘죄’라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의 선물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특약이 있고 선물로 주신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한 우리 탓인 것입니다.

때문에 사순절 묵상의 핵심은 사랑의 하느님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주님처럼 딱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순, 죄와 맞서는 능력을 얻는 복된 시기입니다. 그러기에 사순 시기에는 신앙의 큰 기쁨과 벅찬 감격이 따릅니다. 이제 믿는 척 꾸미고 사랑하는 척 겉모양에 취했던 거짓 믿음을 잘라냅시다, 오늘, 지금, 이 순간,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께 큰 음성으로 응답해드립시다.

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쁘게 순명하는 믿음인으로 도약합시다.

십자가를 사랑하고 끌어안는 건강한 믿음으로 주님께 힘이 되어 드리는 튼튼한 우리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가톨릭신문 2020-03-25 오전 11:30:15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