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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89) 예수님과 사탕 2019-06-14

버스를 타고 어디를 좀 가려고 정류소에 서 있을 때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있는데, 낯선 할아버지 한 분이 내게 다가오시더니 호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보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래서 살짝 짜증 어린 목소리로 말하기를,

“아, 예. 예수 믿을게요.”

그렇게 말한 후, 그냥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런 다음, 5초 정도 있다가, ‘할아버지가 가셨겠지!’ 하며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그 사탕을 잡고 내 눈앞에 가만히 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내가 눈을 뜨자,

“예수 믿으세요.”

그러면서 내 눈앞에 사탕을 계속 보여주시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할아버지 때문에 예수님을 안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 뻔했습니다. 실제로 내 마음속에서는 ‘할아버지가 저렇게 사탕을 흔들며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누가 믿겠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버스가 왔고, 나는 그 버스를 타고 볼 일을 보러 갔습니다. 그렇게 볼 일을 보는 도중에 내 자신의 그런 행동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이그, 좀 더 친절하게 말씀드릴걸! 할아버지. 수고가 많으시네요. 사실 저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할아버지,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예수님 전도 잘하세요!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보니 그날, 할아버지가 사탕을 가지고 와서 ‘예수 믿으세요’, 하니 그게 은근히 기분이 나빴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 편으로는 ‘신앙생활이 무슨 사탕이냐! 예수님이 사탕이냐!’ 이렇게 생각을 했기에 자연히 그 할아버지에게 나도 모르게 불친절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녁 수도원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마음 한구석에, 나의 신앙이 마치 사탕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도, 예수님도, 성령님도 늘 달달한 사탕이기를 바랐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성모님도 언제나 달달하고! 그리고 나의 신앙생활도 언제나 달달하고, 성경 말씀도 무척 달달하고, 나와 가까운 주변 분들의 신앙생활도 달달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신앙이 사탕처럼 달달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을 사탕처럼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수난, 죽음, 인간 구원을 위한 부활 사건도 깊은 통찰이나 묵상 없이, 또한 주님 수난에 동참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의 마음을 느끼기보다, 십자가 수난 신비도 마치 달달한 사탕 같이 내 삶을 달콤하게 해 주는 사랑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었음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사탕. 당이 떨어져 기운이 없을 때 에너지를 채워 주는 역할을 하기에, 우리 몸의 당을 채워주는 좋은 군것질 식품. 그러나 과하게 먹게 되면 결국은 몸을 상하게 만드는 물질. 심지어 너무 과하게 먹으면 몸이 당 조절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병의 요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날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묵상은 그 자체로 달콜한 속삭임입니다. 하지만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에 너무 젖어 있으면,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길고 긴, 죽음의 여정, 십자가의 길을 빼 먹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사탕을 주며, ‘예수 믿으세요’하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좋은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할아버지가 주는 사탕을 감사히 잘 받을걸! 그리고 받으면서 할아버지에게 저도 예수님 잘 믿어 볼게요!’ 그 한 마디 말, 다정하게 해드릴걸…, 후회 아닌 후회를 해 보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신문 2019-06-14 오후 2:54:5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