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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42) 나는 저항한다 2019-06-14
미래 세대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 자연유산을 가로채는 짓인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환경부의 승인만 남겨둔 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권력과 자본의 폭력 앞에 설악산 어머니가 돈벌이의 대상이 되어 알몸을 드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끝끝내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삶을 걸고 저항할 것이다. 뭇 생명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살기 위해 간절함으로 몸을 던져 저항한다. 대청봉에 깊이 팬 상처가 아물고 푸른 나무들이 가득할 때까지 나는 저항한다. 설악산에 깃들어 사는 생명이 마음 놓고 살아갈 때까지 나는 저항한다. 숲속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침묵의 숲이 되지 않도록 나는 저항한다.

한겨울 눈 위에 짐승들의 발자국이 없는 황량하고 쓸쓸함을 견딜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어두운 밤 산길을 갈 때 소리없이 다가와 부드럽게 나를 스치는 생명의 감촉을 잊을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어둠 속에서 어린 짐승의 투정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절망의 때를 맞이할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바위 밑에 앉아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내 곁에 산양이 뛰어들기를 꿈꾸며 나는 저항한다. 깊은 눈을 헤치고 지나간 멧돼지의 훅훅하는 숨소리가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숲속에 들어 나무통을 두드리는 딱따구리의 두드림 소리가 그치지 않기를 바라기에 나는 저항한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쳐도 꼿꼿하게 서서 견디는 나무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누웠다 다시 일어서는 풀꽃을 보고 싶기에 나는 저항한다. 무리 지어 피어나 하늘 꽃밭을 이루는 꽃들의 아름다움을 잃고 싶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아름다움조차도 누릴 수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지를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아이들이 어른 되어 대청봉에 올라 정상의 존엄성과 외경심에 빠질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설악산이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우리들의 삶을 이끌어주기를 바라며 나는 저항한다. 신이 바라본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잃고 싶지 않기에 나는 저항한다.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기에 나는 저항한다. 나의 힘은 적고 보잘것없지만 간절함은 하늘에 닿고 사무치는 마음은 꽃을 피울 것을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고 삶에서 무엇이 가장 큰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알기에 나는 저항한다. 설악산 어머니여! 산양 형제여! 영원하여라!


박그림(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가톨릭신문 2019-06-14 오후 2:54:5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