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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복음] 사순 제3주일 - 나를 바라고 기다리는 분 2019-03-20
▲ 한민택 신부



살다 보면 하느님을 원망하게 하거나 하느님이 과연 계신지 의심이 들게 하는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나 멕시코의 대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 일상에는 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러운 병이나 죽음과 같은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러한 일을 겪으면 망연자실하며 과연 인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묻곤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한 일이 발생했나 봅니다. 제물을 바치려는 갈릴래아 사람들이 빌라도에 의해 학살되는 일을 접하며,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님께서 제물을 바치려는 사람들이 학살당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하고 물었을 것이며,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비극적 소식을 접하며 사람들이 느꼈던 괴로움과 슬픔을 함께 겪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죽음이 죄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라는 의견에 동조하시지도, 하느님을 대신해 변신론을 펼치지도 않으십니다. 실로암 탑이 무너져 깔려 죽은 사람들의 예를 덧붙이시며,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인간의 타고난 조건과 한계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이 말씀은 인간 존재의 우연성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인지,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들에 피었다 사라지는 꽃처럼 우리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며, 그 사라질 날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우리의 생명은 시시각각으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을 병마, 삶에서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시련들…. 어처구니없는 죽임을 당한 이들 속에 내가 속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릴 것도,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가 나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해서 어느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비참한 운명을 지닌 나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조건을 벗어날 길을 제시합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 길이란 회개, 곧 가던 길을 되돌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연적이고 나약한 존재인 인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나를 바라고 기다리는 분, 곧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에 나오는 작은아들처럼, 지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을 향해 돌아갈 수 있다면, 그분께 나의 온 존재를 의탁하고 내맡길 수 있다면 우리는 ‘우연적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필연적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은, 구원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며, 구원을 위해 중요한 것은 믿음, 곧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크고 작은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와 친교를 이루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써내려가고자 하십니다.

우리를 향해 내미신 그분의 손에 응답할 수 있기 위해, 죄와 나약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3-2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