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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윤희 개인전

  • 기간 : 2017-10-11 ~ 2017-10-24
  • 작가 : 함윤희

  • 갤러리1898 > 함윤희 개인전

두 번째 외출이다.

접었다 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손에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잡혀 있는 게 없는 걸 알았을 때
손에 가득 잡았던 것들을 스스로 내려 놓거나 버려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건 쉼표였다. 
쉼표는 나를 헤아리는 일이다. 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중국 작가 ‘잔홍즈’의 말을 빌리면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데 여러 형태의 쉼표 중 하나인 여행길에 들고 간 책 가운데 도자기 역사서를 읽고 우연찮게 도예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지만, 각 나라의 역사관련 책을 보면 거의 첫 부분에 흙으로 빚은 토기(土器)를 소개하고 있고 박물관마다 소장된 나라별 시대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담긴 도자기를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순간을 표현하고 싶은 강한 호기심이 지금에 와 있다.

너무 흔해서 일까? 흙, 물, 공기, 바람, 식물 등 무심히 여겼던 것들에 대한 깊은 생각과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선’으로 이끄는 자연의 손길임을 알았다.
흙과 물이 서로 만나 물성(物性)이 변하고 나무와 공기?바람이 서로 만나 불을 생성하고, 손끝에서 변화(變化)된 물성과 불의 이차적 만남이 성사되면서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은 인간의 삶과 무척 닮았다.

흙장난을 하며 뛰놀던 유년시절,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뭇잎 배를 갖고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연으로 회귀하고 싶고, 인위적인 개입을 되도록 피하고 손놀림 그대로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싶어 느리지만, 직접 코일링(coiling)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들을 표현하였다. 숨어 있는 것과 보이는 것들(바람의 눈과 흔적, 바람을 머금거나 품은 꽃잎, 물결 등)을 표현하고자 했고, 근원적인 자연의 산물과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들을 소재로 했다. 언제부턴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크고 또렷하게 보이는 건 나무였다. 항상 곁에 두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나무가 그렇게 내 안에 들어와 있다.

인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쉽게 구하고 사용하고 폐기해 버리는 요즘, 작업을 하면서도 잠시 망설여지는 건 사물을 좀 더 아끼고 예술적 표현 감각이나 미학적인 것을 찾아내 작품을 통해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너, 나, 모두 자연의 일부이므로! 
어차피 우리는 자연(自然)에서 다시 만난다.

여름을 이기는 가을에…                                     2017. 10. 함윤희 마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