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속 성경 이야기] 외젠 들라크루아의 <피에타> -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 <피에타>, 1844년 완성, 유약 위에 밀랍과 유채, 355x475cm, 생드니뒤생사크레멍 성당(Saint-Denys-du-Saint-Sacrement, 파리) 힘차게 깃발을 든 여인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년)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정신을 상징하는 이 그림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인데요, 오늘 소개할 성화는 그 작품으로부터 14년 후, 그가 40대 중반에 이르러 완성한 그림입니다. 지난 8월 3일자 주보에서 소개한 30대 초반의 작품 <성모의 교육>에서도 드러나듯 매우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들라크루아는 여기서는 한결 더 자유롭고 거칠어진 붓 터치를 구사합니다. 민족을 구원하리라는 메시아를 향한 유다인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희망은 충격적인 십자가 사건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폭이 5m에 가까운 이 <피에타>는 절망의 순간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돌에서 피에타의 형상을 끌어냈듯이, 들라크루아는 암흑에서 빛을 발하는 구세주를 끌어냅니다. 깊은 절망으로 무거운 적막만 흐르는 밤, 벌써 생명의 기운이 사라져 불길한 곰팡내 나는 녹색의 예수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졌습니다. 중앙에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두 팔을 뻗어 절규하는 성모님이 있고, 그분 무릎 위로는 아드님의 시신이 힘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을 부둥켜안은 여인 뒤에는 향유 병이 놓여 있어 그가 마리아 막달레나임을 알려줍니다. 맞은편에는 예수님의 팔과 손을 잡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인과 성모님 뒤로는 붉은 두건을 두른 또 다른 여인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을 포함하여 십자가를 바라보던 “많은 여자들”(마태 27,55.56) 가운데 두 명입니다. 성모님 바로 뒤에는 붉은 복장을 한 남자 두 명이 있는데, 좌측에 붉은 망토를 펄럭이는 젊은 사람은 사도 요한이고, 그 옆은 주님의 장례를 치른 아리마태아 출신의 요셉입니다. 또한 우측 멀리 있는 두 인물 중 한 명은 이곳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비극적 현장을 바라보는 증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여기, 격정적인 감정 분출을 극적이면서도 고전적 절제미로 풀어낸 프랑스 낭만주의의 디테일이 있습니다. 바로 성모님 뒤 세 인물의 붉은 의상이 피 흘린 그리스도를 대신해 수난과 희생을 연상시켜주는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과 성모님은 하늘로부터 드리워진 순백으로 눈부시게 빛납니다. 한편, 성모님의 두 팔은 십자가가 되었고, 그리스도 아래 드리워진 피 묻은 수의에서는 그분을 감싸 안은 온기가 느껴집니다. 종교철학자 박갑성 선생(1915~2009년)의 표현을 떠올려봅니다. “성모는 예수의 그늘이다. 여성은 자연계를 대표하는 초자연의 그늘이다. 여성은 소극적인 것의 원리로 자연 속에 머물지만, 초자연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원리이며 바탕이다.” 그렇습니다. 성모님은 인류의 모든 고통을 품에 안은 십자가이며 만물의 바탕이 되신 분입니다. * 박혜원 소피아 : 저서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2020) 「혹시 나의 새를 보았나요」(2023), 현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2025년 10월 19일(다해) 연중 제29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의정부주보 4면, 박혜원 소피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