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이야기] 루치아 성녀 - 프란체스코 델 코사(Francesco del Cossa, 1436-1478), 1473년경 제작,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National Gallery of Art), 미국 워싱턴 D.C. 르네상스 시대 미술에서는 성녀 루치아가 손에 눈알을 들고 있거나접시에 올려놓은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중세부터 내려오는 『황금 전설』이야기에 기반한 것으로, 루치아 성녀 이야기는 특히 이탈리아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곧 가톨릭 문화권 전반으로 퍼졌다. 루치아는 3세기 말 시칠리아에서 태어난 귀족 출신 여성으로, 기독교 신앙과 정절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거부하다가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순교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그녀가 남성의 음란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눈을 도려냈다고도 하며, 하느님의 기적으로 그녀의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전설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성녀 루치아는 ‘눈’을 상징하는 성인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루치아’는 이탈리아어/라틴어 lux - ‘빛’을 뜻하는 단어 - 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이번 주에 소개되는 프란체스코 델 코사의 작품은 특히 독창적인데, 화가는 성인의 도려낸 눈을 꽃처럼 장식된 형태로 표현했으며, 성인은 강렬한 표정과 불굴의 태도를 지닌 인물로 그려졌다. 즉, 성인은 단순한 순교자를 넘어, 자신의 몸과 시선을 스스로 제어하고 제시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생각해 본다면 매우 획기적인 생각으로, 아마 그 당시 대두되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이 아닐까 한다. 하느님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마음가짐이면 아마도 이렇게 주체적인 순교자의 모습이 수긍이 간다. 이 그림은 15세기 후반, 플로리아노 그리포니라는 후원자의 의뢰로 제작된 제단화의 일부로 추정되며, 후원자의 아내 이름이 루치아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상징성은 더욱 깊어진다. 미술사학자 로베르토 롱기는, 눈을 꽃으로 형상화한 것이 후원자의 이름 ‘플로리아노(꽃과 관련된 이름)’와 연결된 것일 수 있다고도 해석했다. [2025년 9월 21일(다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 군종주보 3면, 김은혜 엘리사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