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속 성경 이야기] 중세 청동 조각의 보물, 리에쥐의 <청동 세례반>

- 르니에 드 위(Renier de Huy)[추정], <청동 세례반>, 1107~1118년, 청동, 91cm(높이)x80cm(지름), 리에쥐 성 바르텔레미 성당(벨기에)

오늘 소개할 작품은 12세기 초에 제작된 <청동 세례반>입니다. 10~12세기에 발달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중세미술 최고의 걸작이라고 손꼽히는 이 작품은 현재 벨기에 중남부 도시 리에쥐(Liege)의 성 바르텔레미 성당에 있습니다. 10세기 말부터 주교후국으로 번성한 리에쥐는 종교, 정치,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원래 이 세례반은 리에쥐의 초대교회인 생 랑베르 노트르담 대성당의 부속 ‘노트르담오퐁 성당’(Eglise Notre Dame aux Fonts)에 설치되었다가 18세기 말 프랑스대혁명의 혼란기에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대혁명 당시 궁정의 화려한 귀족 미술뿐 아니라 수많은 교회미술이 무참히 파괴되었는데, 그 폭력을 피할 수 있었던 건 기적이 아닐까 합니다.

작품의 출처는 모호합니다. 우선, 노트르담오퐁 성당 수도원의 원장 힐린(Hillin)이 주문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시 리에쥐가 위치한 뫼즈(Meuse) 강 유역에는 이같이 우아한 단순미가 돋보이는 자연주의풍의 작품들이 제작되곤 하였습니다. 12세기 중세는 신(神) 중심의 사고를 하는 시대로 아직 한 개인이 주인공으로 드러나던 때가 아니지요. ‘예술가들의 시대’가 열리는 건 르네상스부터입니다. 그런데도 이 걸작의 작가는 르니에 드위(Renier de Huy)라는 인물로 추정됩니다. 한편,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되어 북쪽의 리에쥐까지 오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현재 많이들 인정하듯 뫼즈 강 유역에서 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작품은 높이 91cm, 지름은 80cm에 이릅니다. 세례반의 상단부 덮개는 열두 제자들과 예언자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오늘날에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덮개 없이도 본래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세례반 하단에는 동서남북으로 세 마리씩 짝지은 12마리의 강인한 수소가 육중한 세례반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머리와 앞발이 돌출된 모습이어서, 다소 정적이고 무겁게 느껴지는 세례반을 지탱함과 동시에 우아한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1열왕 7,23~26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에 마련된 “청동 바다 모형”이 묘사됩니다. 그 바다 모형은 지름이 4.40m, 원주 13.20m, 높이는 2.20m에 달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 왕국의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파괴되어 그 영화로운 모습은 상상으로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청동 세례반>은 그 모형에 관해 묘사한 바를 많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청동 세례반>의 측면에는 다섯 개의 세례 장면이 고부조로 조각되어 있는데, 그 중심에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는 그리스도상이 있습니다. 요르단강에 하반신을 담근 그리스도와 그 좌측으로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혀 세례를 주는 요한이 있습니다. 우측에는 날개 단 두 천사가 역시 겸손한 자세로 그리스도의 옷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모습이 재미나지요? 마치 18세기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드레스를 입은 듯 보입니다. 이는 이콘에 나오는 강물의 표현에서 유래하는데, 여기서는 입체적으로 돌출되다 보니 기이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마치 물결치는 문양의 드레스를 입은 듯 보이는 예수님은 겸손한 자세로 물에서 올라오고 계십니다. 비둘기 형상의 성령과 하느님의 축복 아래서 말이죠.

* 박혜원 소피아 : 저서 「혹시 나의 양을 보았나요」(2020) 「혹시 나의 새를 보았나요」(2023), 현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

[2025년 4월 20일(다해) 주님 부활 대축일(장애인의 날) 의정부주보 4면, 박혜원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