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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미술 > 성화/이콘 해설

2019-07-08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의 일흔두 제자의 파견

[그림 읽어주는 신부] 일흔두 제자의 파견

-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일흔두 제자의 파견, 1523년경, 나무판에 유채, 42x32.5cm, 국립 회화관, 베를린, 독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뒤에 일흔두 제자를 지명해 파견하시며 구체적인 처신에 관해 제자들에게 당부하신다. 첫 번째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수확할 밭의 주인께 추수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는 것이다.(10,2) 기도 없이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을 것이다.(10,4) 복음 선포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을 보내는 예수님의 마음은 마치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10,3) 사람들의 냉대가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파견되는 제자들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화를 빌어 주고,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고 한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10,6-7) 복음 선포는 더 나은 접대를 받으려고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명 수행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사명은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선포하는 것이다.(10,9) 그러나 그들이 제자들을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밭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리라고 한다.(10,10-11) 멸망의 책임은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16세기 초 자연만을 그리던 도나우파의 일원이었던 독일화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Albrecht Altdorfer, 1480-1538)는 루카 복음 10장 1-12절을 소재로 <일흔두 제자의 파견>을 그렸다. 제자들은 험한 산을 배경으로 하고 중앙에 있는 무너진 폐허의 문에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 험한 산은 선교의 위험성을 나타내고, 폐허는 인생무상을 상징하기에 복음 선포의 이유를 말해준다. 제자들은 더러는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어떤 제자는 무덤과 불구덩이에 빠진 사람의 손을 잡아 끌어당기기도 한다. 복음 선포는 사람을 만나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저마다 성경 말씀대로 손에 지팡이만 들고 여행 보따리도 없으며 신발도 신지 않았다. 또 산 아래에는 외딴 마을이 있어 제자들이 찾아갈 마을임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평화의 사도로 파견하신다. 우리가 병자들을 도와주고 선을 실천하여 악을 추방한다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사람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초대하는 것이다.

[2019년 7월 7일 연중 제14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손용환 요셉 신부(캐나다 런던 성 김대건 한인성당)]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a/altdorfe/2/04commu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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