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ws

알림

0

prev

next

가톨릭성미술 > 성화/이콘 해설

2007-02-07

Domine 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CARRACCI, Annibale
Domine quo vadis?
1601-02
Oil on panel, 77.4 x 56.3cm
National Gallery, London

 

 

 

다음 날 새벽, 캄파니아 쪽을 향해 아피안 국도(國道)를 걸어가는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들은 나자리우스와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마침내 순교(殉敎)하는 신자들을 버리고 로마를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희미하게 푸른 동녘하늘이 차음 밝아오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은빛으로 빛나는 숲과 흰 대리석으로 장식한 별장, 그리고 교외의 들판에 가로놓인 도수관(導水管)이 어렴풋이 그 모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나뭇잎과 풀밭에 맺힌 이슬이 아침 햇빛에 반짝였다. 차츰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들판과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집들, 묘지, 숲 그리고 그 속에 세워진 전당(殿堂)의 하얀 기둥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에는 아직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채소 장수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길에는 멀리 알반 산까지 자갈이 깔려 있어서 두 사람의 나막신 소리가 조용히 아침을 헤치며 울려 퍼졌다.

 

이윽고 언덕 위에 둥근 아침해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와 때를 같이하여 사도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태양의 금빛 테두리(輪)가 하늘로 오르지 않고 도리어 땅을 향해 아래로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베드로는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너도 이쪽으로 다가오는 저 햇빛이 보이느냐?"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사도님."

 

하고 나자리우스는 이상한 듯 대답했다. 베드로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저 햇빛 속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 오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위는 끝없이 조용했다. 나자리우스는 마치 누가 나무를 흔들기라도 하는 듯 흔들리는 가지를 보았을 뿐이었다.

 

햇빛은 저멈 들판 위로 퍼져 나갔다. 그는 당황해서 사도를 쳐다보았다.

 

"사도님, 무엇을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있습니까?"

 

하고 무척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베드로느 손에 들고 있던 단장을 땅에 떨구었다. 그는 꼼짝 않은 채 입을 벌리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驚愕)과 희열, 그리고 황홀한 빛이 함께 나타나 있었다. 그는 갑자기 땅위에 무릎을 꿇고 손을 앞으로 쳐들고 소리쳤다.

 

"오오,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는 마치 형체없는 사람의 발에 입을 맞추기라도 하듯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늙은 사도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쿠 오 바디스 도미네? (Quo vadis, domine?"'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자리우스에게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의 귀에는 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퍽 슬프게 들리기도 했다.


 

"그대가 나의 어린 양들을 저버렸으니 나는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로마로 가야겠구나.

 

사도는 말없이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땅에 엎드려 있었다. 나자리우스는 사도가 혹시 기절했거나 아니면 죽은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했다.

 

마침내 베드로는 몸을 일으켜 떨리는 손으로 다시 단장을 짚고 입을 다문 채 일곱 언덕이 우뚝 서 있는 로마를 향해서 발길을 들렸다.

 

이것을 본 소년 나자리우스는, 베드로가 조금 전에 말했던 것을 산울림처럼 되풀이했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
"로마로─"

 

하고 사도는 나직히 대답했다.

 

이리하여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 2,879
  • 3

신고

김창민[stopmotion]

tag

  • facebook
  • twitter
  • pinterest
  • google

Comments
Total0
※ 2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